유정아 유리예술가
본인이 작업을 하는 이유는 작업을 통해 현재 살아가고 있는 차원을 넘어 또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업을 하며 그 작업에 굉장히 몰입하게 되고 그 몰입을 통해 현실 넘어 다른 차원으로 가는 듯 한 기분이 든다. 그런 몰입의 상태에서는 주변의 모든 소음이 차단되며 작업에만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이런 경험은 어린 시절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거나 만화를 볼 때도 나타났었는데 그럴 때는 현실과는 분리되어 장난감과 만화의 세계에 빠져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런 몰입을 통해 현실의 괴로움이나 어려움은 잠시 잊고 마음껏 그 세계를 즐길 수 있었다. 일종의 도피처 같은 역할이라고 할까.
이런 작업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릴 적의 필자는 내성적인 아이였으며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였다. 어릴 적의 나는 새로운 학원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도 부끄러워서 할 수 없었을 만큼 내성적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늘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유치원을 다니고 학교를 다녔다. 그러면서 친구들은 늘 집근처의 같은 동네가 아닌 차를 타고 가야하는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집에 오면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고 점점 자기만의 세계가 깊어진 것 같다. 그럴 때 나를 위로해 주던 장난감 친구들과 감정의 교류를 나눴던 것 같다. 장난감과 놀고 만화를 보며 친구의 빈자리를 채워나갔다. 혼자 노는 법을 익혀갔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일상을 바라보는 본인만의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남들은 무심히 지나쳐가는 일상에 숨겨진 친구들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들은 마치 낮에 나온 반달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을 내가 다가가 찾아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그들을 찾아냄으로써 친구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스스로의 외로움을 치유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길을 걸어가며 새로운 친구를 찾고 만남으로써 나의 작업의 세계는 증식해 간다. 이런 작업 세계를 스스로 ‘원더랜드’라고 칭하는데 이런 원더랜드를 구축해나가는 작업은 어릴 적 놀이와 같이 즐겁다.
이런 식으로 길을 가다가 밥을 먹다가 일상생활을 통해 계속적으로 등장인물들이 새롭게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원더랜드는 끊임없이 증식하게 된다. 일상과 함께 하는 원더랜드인 것이다. 원더랜드와 일상은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세상이면서도 서로 소통하며 상호교류 하는 세계이다. 어떻게 보면 일상에 원더랜드를 덧칠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원더랜드를 구성하는 요소는 일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많다. 기계의 스위치 버튼, 벽에 박힌 못, 길가의 구멍 등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캐릭터에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사물을 본인만의 시각으로 필터링해서 보게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차를 타고 먼 길을 떠날 때 무료함에 차창 밖을 보며 갔었는데 그때 차창 밖에는 원더랜드가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보면 시각적 인지라는 것이 꼭 거기에 실제 존재하는 사물만을 본 그대로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필자에게 있어서는 그렇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원더랜드라는 필터를 덧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리는 원더랜드를 표현함에 있어서 매력적인 재료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유리가 가지는 투명함과 반짝이는 색감이 그리고 유리를 배우고 난 뒤에는 유리끼리 여러 장을 겹쳐 녹이면 한 장의 유리로 재조합되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원더랜드를 표현하는데 있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하루를 살아갈수록 원더랜드는 늘어간다.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나 떠오른 형태를 드로잉으로 남겨놓거나 사진으로 담아놨다가  다시 유리로 풀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유리 조각으로 변화된 환상의 파편들이 모여 환상의 세계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조각을 모아 녹여 하나의 환상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이 매일 매일 적층되어가는 원더랜드에 대한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특정 요소를 빼와 녹여내 원더랜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흡사 연금술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상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요소들에게 자극을 받으며 그것을 원더랜드라는 작업으로 풀어가고 있다.
모래사막의 신기루가 나타나듯 모래를 기본으로 이루어진 물질인 유리로 원더랜드를 표현해왔다. 원더랜드를 표현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과정은 놀이와 같이 즐거웠었다. 파우더를 풀과 섞고 그걸로 다시 드로잉을 하는 과정은 어린 시절 소꿉놀이를 하던 기분이었다. 모래를 물에 섞고 그걸로 어떤 형태를 만들던 기억이 떠올랐다. 색까지 더해져 원하는 색을 원하는 위치에 배치하는 작업도 재밌었다. 블로잉 작업의 경우에는 사람은 혼자 살수 없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는데 관계를 맺으며 더불어 살아가고 타인과의 의사소통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는 블로잉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본인이 창조해나가는 세계라고는 하지만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원더랜드 역시 어떤 개체가 단독으로 있어 형성되는 세계가 아니라 여러 가지 개체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형성되는 세계이다. 작업을 해가면 과정을 통해 이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1.07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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