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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 장수의 자격
얼마 전 오랫동안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해온 한 도예가를 만났다. 그는 일주일간 4곳의 대학에서 강의를 뛰고, 그중 한번은 서울과 부산을 오간다고 한다. 실로 국내 최장시간, 최장거리 시간강사다. 그것도 부족해 지난 학기부터는 박사과정도 밟고 있다. 이쯤되면 그를 도예가라 지칭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다.문득 몇 해 전 한 대학 동기를 만난 일이 떠오른다. 그 역시 전업작가로 활동하다가 신학기를 맞아 대학 한 곳에서 강의를 맡게 된 터였다. 강의하게 된 과목은 ‘CADComputer Aided Design실습’. 그는 당시 컴퓨터를 남들에 비해 잘 다루기는 했지만 CAD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실력은 아니었다. 석사를 마친 후 몇 해를 기다려서 얻은 강사 자리라 놓칠 수 없어, 이른 새벽 CAD전문 학원에 들러 수업을 받고 곧바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그날 배운 것을 똑같이 가르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근 그도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강사 대열에서 밀리지 않고, 더 많은 강의자리를 얻어 최장시간, 최장거리 시간강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중인 것이다.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이들이 굳이 전업작가가 아닌 전업강사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명 보따리 장수로 불리는 비정규직 지식노동자를 자처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강사자리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이유가 학문과 교육에 대한 애착과 학자적 자부심일까. 아니면 그 힘들다던 전임교수직을 차지해 가문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일까. 요즘같이 전국의 도예과가 경쟁력에서 밀려 폐과되는 실정에도 대학이라는 거대한 체재의 순응 집단속 일원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넘처난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입학을 영업해야하고, 제자들의 취업을 알선하는 학자 답지 않은 고역을 치러야하는 자리임에도 말이다.대학 도예전공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미래의 꿈을 그리는 대상은 당연히 전업도예가 혹은 도자디자이너가 1순위 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도자문화를 기반으로 활동 할 수 있는 전시기획자, 혹은 마케팅전문가, 도예이론가, 전문지 기자 등을 꿈꾸며 그에 걸 맞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물론 그 비전 안에는 전임교수로써의 꿈도 있을 것이다. 실상은 어떠한가. 학부를 졸업하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다. 4년간 자신을 가르쳐온 이들의 과정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석사를 마치면 자연스럽게 보따리 장수의 대열에 합류하게되고 그곳에서 우위에 서기위해 엄청난 금액의 학비를 부담하며 박사가 돼야한다.대학에서 졸업 후 진출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비전을 올바르게 배우지 못한다면 학생들은 졸업 후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한 시간을 다시 허비해야만 한다. 따라서 대학에서 학생을 지도하는 이들의 자질은 그만큼 중요하다. 시간강사의 대열에 선 자들 중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춘 자가 아닌, 단지 순서 된 자가 강의를 맡는 악순환은 끊어져야한다. 얄팍한 지식을 무방비로 흡수한 자아없는 학생을 양산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태완 편집장 anthos3@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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