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모인 모임을 만나다
혼자가 아닌 여럿의 힘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고, 멀리 가고 싶다면 같이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작가 활동을 위해 ‘함께’를
선택한 도자 모임 3곳을 만나보았다.
법고창신 法古創新
회원 이강효, 정재효, 김상만, 이창화, 김규태, 이동식, 이은범, 허상욱, 김경남,
김진규, 박성욱, 이정용, 강영준, 우시형 총 14인
시작연도 2009년
‘법고창신’이란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의미이다. 옛것의 익힘이 철저하
지 않으면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없기에, 제대로 익혀 새로움을 창조해 나가자는
의의를 두고 설립되었다. 모임의 초기 회원은 2009년 경기도자박물관에서 진행한
전시 <법고창신>에서 만났다.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 도예 작가가 모인 만큼 한 번
의 전시로 종료되는 것이 아닌, 지속해서 모이면 어떻겠냐는 경기도자박물관의 최
건 관장의 추천으로 시작되었다. 현재는 후배 작가들이 합류하여 분청, 백자, 청자,
무유도기 등 전통을 기반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발전시키는 14명의 현대 도예 작가
로 구성되었다. 수도권에 비해 도자 문화를 가까이하기 어려운 지방에서 매해 1~2
회 전시를 열고, 함께 여행하며 영감을 얻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부산, 제주도,
강릉 등을 거쳤으며 올해는 대전에서 전시를 진행하고, 계룡산을 여행했다. 법고창
신의 회원은 서로가 쌓아온 경험이 다르다는 점을 통해 정보와 관심사를 적극 공유
한다. 이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지속적으로 작업을 탐구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
허상욱 작가는 “법고창신의 뜻대로 전통을 기반으로 현재 나다운 작업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 노력한다.”며 “작업장에서 작업만 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는데 함께 모
이면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고창신의 아홉 번째 단체전 <흙의 응시>가 대전의 지소갤러리에서 3월 25일부
터 4월 28일까지 열렸다. 이번 전시는 ‘앉아서 바라보다’라는 관점에서 비롯해 지그
시 작품을 감상하고,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스툴과 벽걸이 작품을 중심으로 선보였
다. 작가의 개성에 맞게 만들어진 작품은 전시장에서 각양각색의 매력을 뽐냈다.
멘토의 역할을 하는 이강효 작가는 산수화 느낌의 스툴을, 정재효 작가는 계곡 주
변의 돌에서 영감을 받아 표면을 거칠게 긁어낸 스툴을 선보였다. 존경하는 정재효
작가의 그릇을 오마주hommage하고, 철분이 다량 함유된 계룡산의 흙으로 벽걸
이 작품을 제작한 이창화 작가도 돋보였다. 그 외로 ‘생각할 사·’와 ‘열매 과果’에서
착안해 사과 모양의 벽걸이 작품을 선보인 김규태 작가, 박지 기법의 긁는 질감을
스툴에 담은 허상욱 작가, 옛 조각보에서 착안해 스툴을 제작한 강영준 작가 등 활
발히 활동 중인 현대 도예 작가의 작품을 한 공간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
를 통해 작가는 자기 작품을 다시 응시하고, 관객은 각자 마주한 현상과 감상을 응
시하는 시간을 가졌다. 법고창신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전시 역시 구상 중이라 말
했다.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법고창신의 발걸음에서 전통을 기반으로 발전하는
현대 도예가들의 신념을 느낄 수 있었다.
도자 그룹
형形
회원 전보슬, 최지현, 이유영, 권은영, 김화영,
김재은, 이해정, 이혜진, 이선희, 이보미,
박보영, 곽예림, 이은주, 박유진, 정다운,
옥원지, 방선영 총 17인
시작연도 1985년
형形 그룹(ceramic & Design Group 形)은 경희대
학교 도예학과를 졸업한 여성 동문의 모임이다. 창립
연도 1985년부터 이어져 올해 38년 차가 된 역사 깊
은 모임으로, 여성 작가들이 졸업 후에도 작업을 독려
하기 위해 모였다. 80년대 당시엔 결혼 적령기가 빨랐
고 가정에서 경제 활동을 위한 일이 아니라 인식되던
작업의 영역은 뒤로 밀리기 쉬웠다. 이때 여성 동문끼
리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작가로서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모
임은 현실 속에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소중한 마디가
되어 준다. 매년 정기전 및 공예 트렌드 페어에 참가
하거나, 월 마다 함께 전시장 또는 동문의 작업실을 방
문하는 등 꾸준한 성장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형 그룹은 대학원, 편입생을 포함해 경희대학교를 졸
업한 여성동문이라면 심사를 통해 가입할 수 있다. 졸
업 25년여 만에 가입한 회원도 있다. 이렇듯 어느 때
이건 함께 작업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작가라는 자아
가 일상에서 뒤로 밀려나지 않게 이끌어 준다. 작업
이야기뿐 아니라 여성으로서 마주하는 삶에 대한 공
감대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역시 큰 장점이다. 박보영
작가는 “친자매처럼 서로를 챙기고 보듬으며, 오랜 뿌
리가 있는 모임이라 대가족과 같은 연대감을 준다.”고
말했다. 형 그룹의 23회 전시 <다시, 꽃을 품다.>가
3월 29일부터 4월 3일까지 경인미술관 아뜰리에에서
열렸다. 봄에 열린 이번 전시는 ‘꽃, 화기, 화이트’를 공
통 주제로, 회원 6인의 작업 세계가 고스란히 전해지
는 화병, 세라믹 회화 등을 선보였다. 형 그룹은 모임
설립 40주년이 되는 2025년은 역대 회원 만남을 계획
중이며, 올해는 새로운 회원 모집에 주력할 예정이다.
토土요일
회원 구경모, 김주호, 박미화, 박준상,
윤명순, 윤주일, 주후식, 최정윤,
한애규 총 9인
시작연도 2012년
‘흙 토土’가 들어간 모임의 이름에서도 추
측할 수 있듯이 토요일은 흙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의 모임이다. 2012년에
서울대학교 조각 전공의 김주호 작가와 도
예 전공의 한애규 작가를 중심으로 시작하
여, 현재는 10년 이상 활동 중인 전업 작가
9인으로 구성되었다. 설립 초에는 흙이라
는 자연 재료가 가진 특성을 탐구하는 방
향의 활동이 주를 이뤘으나, 현재는 기술
및 재료의 발전에 발맞춰 에폭시, 레진 등
다양한 재료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서로
새로운 재료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작
품 제작을 돕기도 하나, 모임의 가장 큰 효
과는 선배 작가와 후배 작가의 사이의 연
대감이다. 토요일은 새로운 관점에서 토
론하고, 교류하는 활기가 넘치는 모임이
다. 후배 작가는 고민이 있을 때 선배 작가
를 찾아가 연륜 있는 해답을 얻기도 하고,
오랜 기간 현장에서 활동하는 선배 작가를
보며 삶의 태도를 배우기도 한다. 선배 작
가는 후배 작가와의 교류에서 활발한 작업
을 이어 나가는 에너지를 받는다. 손수 작
품을 박스에 담아 전시장으로 옮기며, 학
부생 때처럼 작업에 대한 넘치는 열정을
함께 교류한다. 이러한 모임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건강한 작가 생활을 이어가
기 위해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마음
이 있었던 덕분이다. 박준상 작가는 “나이
가 들수록 현장에서 동료, 선후배를 만나
기 어렵다.”며 “조형, 도예, 조각 분야에서
꾸준히 작가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이들과
교류하는 연대감이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
준다.”고 말했다. 토요일의 아홉 번째 단
체전 <토요일, 토요일, 토요일>이 4월 1
일부터 29일까지 아트인동산에서 열렸다.
전통적인 흙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
부터 털실, 한지, 레진 등 다양한 재료를 활
용해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펼친 작품까지
현업 조형, 도자 작가 8인의 대표작 25점
을 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이하 생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3년 5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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