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4. ~4. 27. 아트뮤지엄 려
박재국 전시 전경
서양철학에서 실체實體는 세상의 근원, 궁극적인 본질을 말한다. 이것은 현상 이면에 작동하는 본질 즉 실상을 의미한다. 니체는 실체를 자신의 삶을 살아 나가려는 창조적 의지라 말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기인 태극기에도 이러한 요소가 담겨있다. 가운데 자리한 태극 太極은 말 그대로 거대한 궁극을 의미한다. 그리고 태극을 둘러싼 사방엔 사괘(四)가 있는데 각각 ‘건·곤·감·리’라 불리며 하늘(건), 땅(곤), 물(감), 불(리)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자연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생명의 순환 그리고 음양의 조화를 통한 발전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뜻한다.
이번 전시는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워 그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 숨 쉬는 공기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 숲속과 하늘, 물과 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구성하는 요소이자 모든 것인 요소들, 그리고 가장 중심인 인간까지 - 궁극적이고 근본적인 존재들이 예술로 재탄생되는 방법과 그것을 표현하는 작가들에 대해 집중 조명해 보기로 했다. 5명의 작가와 함께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부제가 의미하는 ‘건·곤·감·리’ 즉 하늘, 땅, 물, 불에서 나아가 보다 확대된 의미를 담은 작품들로 구성하였다.
조진규 전시 전경
하늘, 땅, 물, 불 외에 창조, 수용, 순응, 우주로 펼쳐지는 에너지의 원천, 밝음과 어두움 등의 확대된 의미를 담아 전개 되는데, 포괄적인 의미로 궁극적인 본질을 담고 있다. 주제나 재질, 만드는 방법 등 확대된 의미로 접근하여 회화, 조각, 도자회화, 사진, 설치 작품을 통해 직관적으로 드러나거나 소재를 통해 만드는 행위에 이러한 요소들을 담아내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근원적 물음, 자연의 흔적, 시간의 형상화를 작품에 담아내는 안종대 작가의 설치 작품과 단단한 철을 소재로 한없이 부드러운 깃털을 만들어 대조적인 속성을 결합하고 시각화한 조진규 작가의 작품은 실상이라는 주제로 귀결된다. 강렬한 흑백의 사진으로 대상이 가진 본질을 강하게 이끌어 낸 이태한 작가는 선명함과 흔들림, 밝음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물이 가진 속성을 잘 보여준다. 또한, 흙과 물과 불의 미학이라 할 수 있는 도자에 회화를 접목하여 도자회화의 길을 개척한 박재국 작가의 작품은 흰색과 여백, 자연적 소재를 통해 가장 한국적인 미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박종문 작가는 본인 인생의 여정을 산과 길에 투영하여 가는 여정마다의 고뇌, 환희, 기쁨과 인생 본질에 대한 질문들을 작품에 담아내었다. 5인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예술의 실체와 본질은 자연에서 시작되어 조화로운 하나가 되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땅에서 시작되어 하늘로 연결되는 그 고리마다의 요소들이 각자의 고민을 거친 손끝에서 피어나 예술로 융합되는 힘을 보여줄 것이다.
사진. 아트뮤지엄 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