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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월호 | 칼럼/학술 ]

[에세이 ESSAY 7] 그릇이 된 생각들_물독모심
  • 이현배 옹기장이
  • 등록 2025-07-30 14:05:39
  • 수정 2025-07-30 17: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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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는 책이 있다. 한글학회에서 1966년 발간하여 1985년에 완간한 『한국지명총람』이다. 흙이란 것이 땅에서 왔으니 그 땅을 알고자 할 때 땅이름, 지명地名을 알면 그 이름만으로도 많이 알아진다. 또 옹기의 몸흙이 퇴적점토이니까 지명을 통해 지나온 과정, 땅의 이력을 먼저 본다. 그런데 전혀 다르게 예언지명이란 것이 또 있다. 

용담龍潭, 용담호 이야기가 그렇다. 용담은 예전 용담현龍潭縣 으로 그 이전에 ‘맑은 도랑’이란 말을 백제시대에는 물거현이라 했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는 한자화로 청거현淸渠縣이라고 하였는데 물과 관련된 지명의 연속이었다. 일제식민에 의해 1940~1945년 지금보다 큰 규모로 진행되다가 해방이 되어 중단된 일이 있었다. 일제가 압록강의 수풍댐 (1937~1943년) 다음으로 대규모로 시도했던 일이었던 만큼 그 어떤 숙명이었는지 1966~1967년 두 번째 시도가 있다가 1990~2001년 기어히 용담댐이 건설되고 말았다. 금강의 물이 만경강으로 유역을 변경하는 지하 도수터널로 은천리隱川里를 지나게 되었으니 이 또한 묘한 일이다.


「물독 모심」 가로 37×세로 47cm


용담댐건설, 1990년~2001년 이 시기에 옹기가 골동화된다. 6개 읍, 면 12,616명의 수몰민이 발생한 것과 우루과이 라운드(관세 무역 일반 협정의 새로운 다국간 무역 협상, 1986년~1994년)에 의한 ‘농산물 완전개방’이라는 사회문화적 배경이 있다. 자급자족, 식량작물 형태의 한국농업, 농촌의 전통적 토대가 무너지면서 대규모 이농현상이 벌어지며 거의 버려지는 가정단위식 장독대가 농촌에 대한 지원의 정책사업 등으로 조성 되는 전통발효 사업장들로 이동한다. 이때 골동품 수집상(나까마)들이 옹기점에도 자주 들렀다. 그들의 차에 실려 나가는 옹기들을 마주하기가 힘겨웠는데 더러 그들에게 구입하기도 했다. 어느날 눈에 띄는 옴박지가 있어 가격을 물었더니 금이 가고 한 쪽 귀도 나가 사소하게 봤던지 그냥 가지라고 한다. 그래 옴박지를 거저 얻었다. 이 옴박지에 주목한 것은 몸흙이 다르다는 거였다. 옹기몸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불을 잔뜩 먹으면 까만 쪽으로 가는 게 있고 다른 하나는 하얀 쪽으로 가는 게 있다. 까만 쪽으로 가는 것은 점력이 좋아 기물을 짓기가 좋고, 하얀 쪽으로 가는 것은 불심이 좋아 불을 먹이기가 좋은데 다만 장이 잘 품는다. 그러니까 그 옴박지는 흙을 찾으려고 얻은 그릇이었다. 바로 찾았다. 앞일꾼 봉수양반께 물었다가 당신의 탯자리이자 수몰지인 평원이 옹기점 태생임을 알았다. 그러다 어느날 문양에 손을 대고 따라 그려 보기를 반복하니 이게 노젓는 행위였다. 그래 “이게 뭐지?”하게 되었다. ‘수몰에 의한 담수’, 이 옴박지는 알았던 걸까?


「옴박지」 구경28.7×가로33×세로 2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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