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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월호 | 특집 ]

[특집I] 이춘복의 도자기 표면에서 기억되는 불의 시간
  • 차윤하 기자
  • 등록 2025-10-02 15:4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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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0̊ C, 소금이 불과 만나는 순간— 표면은 기억을 품는다. 불의 방향, 연기의 흐름, 소금의 양과 타이밍. 그 어떤 계산도 완벽하지 않고, 작가는 예측 대신 감각과 경험으로 대응해야 한다. 바로 소금유의 세계다.

그러나 이 기술은 장작가마 없이는 불가능하고, 가스가마로도 별도 설비가 필요하며, 전기가마에선 아예 시도조차 어렵다. 염소가스에 의한 가마 부식과 인체 유해성, 그을음으로 인한 민원, 입자 불균형에 따른 작품 파손 위험까지. 이 모든 제약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한 점의 도자도 만들 수 없다. 소금유는 수월하지 않은 기법이자, 극단적으로 진입장벽이 높은 방식이다.



PART 1. 소금이 유약이 되는 순간


14세기 중엽, 독일 라인강 유역의 도공들은 장작가마에서 뜻하지 않은 발견을 마주한다. 소금(염화나트륨, NaCl)을 불 속에 던졌을 때, 도자기 표면이 유리질처럼 빛나는 질감으로 변한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소금유Salt Glaze로 불리는 고온 유약기법의 기원이다. 

유럽 도자사에서 소금유는 단지 유약 방식 중 하나가 아니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산업도자기 생산의 핵심 기술로 자리잡으며, 가마의 구조, 점토의 특성, 사회 경제적 조건까지 긴밀히 엮여 발전해왔다. 특히 바렌슈타인Westerwald과 호헨베르크Höhr-Grenzhausen는 점토 내 철분 함량과 고온 장작가마 환경이 결합된, 소금유 발전의 상징적 거점이었다.


불과 소금이 만들어낸 표면의 언어

소금유의 원리는 간단하지만 극적으로 작동한다.

가마 내부 온도가 1250℃ 이상에 도달하면, 투입된 소금이 분해되어 산화나트륨 (Na₂O)과 염소기체가 된다.

이 산화나트륨은 도자기 표면의 실리카와 반응하여 유리질 층을 형성하고, 그 결과 특유의 오렌지필orange peel 텍스처와 은은한 반광택이 남는다.

표면은 단지 아름다움의 결과가 아니라, 가마 속 불길의 흔적, 장작의 배치, 대기의 흐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즉, 소금유는 불의 기록과정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푸레도기 전통과도 깊은 미학적 공명점을 형성한다.


실험은 계승의 또 다른 방식

이러한 유럽의 도자 기술을 한국 장작가마 환경에서 재현하고자 한 것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다. 나는 2020년부터 독일 소금유의 역사적 기법을 추적하고, 한국의 장작가마 구조에 맞게 가마 내부의 공기 흐름, 투염 위치, 연소 방식 등을 조절하며 반복 실험을 진행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도자기마다 위치에 따라 표면 질감이 다르게 형성되는 예측 불가능성이었지만, 이 또한 ‘소금유만의 언어’라는 점에서 매력으로 다가왔다. 전통이란 단순히 과거를 모사하는 것이 아닌, 그 원리를 이해하고 새로운 맥락에서 실험하는 일이다. 한국의 푸레도기 전통이 한때 멈춘 채 전통의 이름만 남아 있다면, 소금유 실험은 그것을 다시 불 속에서 되살려 보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기법은 도구일 뿐, 결국 도공의 시선과 태도가 그 가능성을 결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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