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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월호 | 실습/재료 ]

도자회화 CERAMIC PAINTING_무필연침 기법 (2)
  • 안영경 미술학 박사
  • 등록 2025-10-31 11: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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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웃으면 아기가 웃고, 아기가 웃으면 개구리도 웃는다


그림1


모란이 지면 작약이 피고, 작약이 시들어가면 수국이 핀다. 모란이 피어났다고 세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거니와 모란이 진다고 해서 세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삼국사기에는 당나라에서 온 모란 그림과 꽃씨를 본 당시에는 공주였던 선덕여왕이 모란 그림 속에 벌과 나비가 그려져 있지 않아서 매우 예쁜 꽃이지만 향기는 없는 꽃이라고 짐작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모란은 겉모습만 예쁜 꽃이 아니라 짙은 향기를 품은 꽃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나라 시인 피일휴(皮日休, 834?~883)는 ‘독점인간제일향獨占人間第一香’, 즉 “이 세상에 으뜸가는 향기를 홀로 차지하였네”라며 모란의 향기를 칭송했다.1) 민화 속의 호랑이는 현실에서 엄청난 힘을 가졌으면서도 민화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곶감이 자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는 우화를 믿을 정도로 어리숙했으면 좋겠다는 인간의 희망을 담아 살짝 모자란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왕실에서 그려진 모란이든 민화 속의 모란이든 우리 민족의 그림에 나타나는 모란은 꽃의 풍성함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림1, 그림2는 모란의 풍성함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선사시대 유럽의 동굴 속에 그려져 있는 동굴화를 보면, 몇만 년 전에 그린 원시인의 그림이 그토록 놀랍게 사실적인 것은 그 들소를 꼭 잡아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절박한 마음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된다.2) 이처럼 모란의 풍성함이 사실적으로 표현된다는 것은 전쟁, 기근, 질병 등으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모란처럼 화사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희망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림2


모란과 작약 및 수국이 모두 사라지면 국화가 피어난다. 하지만 국화도 결국엔 병들고 시든다. 중국 병법에 나오는 “단공檀公의 ‘36’ 가지 계책 가운데 달아나는 것이 제일이다.”라는 말처럼 이 세상에서 ‘36’계 줄행랑치고 싶었는지 조선조 숙종 ‘36’년에 태어나 영조 ‘36’년에 사망한 선비 이인상은 서얼인 자신의 마음을 병든 국화로 표현한 그림을 그렸다. 생각해 보면 모란, 작약, 수국 그리고 국화까지 결국은 병들고 시들고 사라져간다. 하지만 아무리 사라져 갈지라도 봄이 오면 기어코 모란은 피고 그래서 모란은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프랑스 자동차업체 시트로엥의 광고를 꽤 오랫동안 담당하면서 그 재능을 유감없이 펼쳐냈던 쟈크 시겔라Jacques Seguela는 웃음을 ‘감성으로 전달되는 웃음’, ‘이성에 호소하는 웃음’, ‘사실에 근거한 웃음’으로 구분했다.3) 모란은 차가운 겨울을 지내며 나누었던 뜨거운 감성의 웃음이고, 힘든 세상을 이겨내기를 바라는 이성의 웃음이며, 드디어 봄이라는 계절을 보여주는 사실에 근거한 웃음이다. 그래서 모란의 자태는 서늘한 가을을 반영하는 국화처럼 사색적이지 않고, 모란은 원초적인 생명력을 지닌 환한 웃음을 닮은 꽃이 된다. 

꽃이 피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장미에는 사랑을, 백합에는 순결함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활짝 핀 꽃송이를 통해 우리의 삶을 해석한다. 모란에도 여러 가지 꽃말이 있지만 모란의 꽃말을 떠나 만개한 모란은 아기의 함박웃음처럼 보인다. 얼굴 가득히 터질듯한 웃음을 짓는 아기들의 얼굴처럼 활짝 핀 모란은 터질듯한 봄 속의 감정을 드러낸다. 하지만 아기의 웃음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아기를 통한 행복도 있지만 아기를 키워야 하는 부담과 불안이 동시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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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brunch.co.kr/@revontulet/55

2) 오주석,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푸른역사, 2017, 85쪽.

3) 이현민, 『트렌드 인문학』, 정한책방, 2017, 32-33쪽.


사진. 필자 제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5년 10월 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온라인 정기구독 포함)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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