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필연침의 펼침 속에 파랑새의 꿈은 모란이 되어

그림1) 구석기 알타미라 동굴벽화
그림1에 나오는 구석기인들이 그린 동굴 벽화는 주로 적색, 흑색, 갈색으로 채색되었고, 파란색은 원시 동굴벽화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었으니 인류에게 매우 낯선 색 이었다. 파란색은 고대 이집트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황금과 같은 가치를 가졌던 청금석을 이용한 울트라 마린 블루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위대함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다. 동양에서도 파란색 안료는 매우 귀했기 때문에, 그림 2에 나오는 파란색 안료를 사용한 청록산수 화법은 세속 을 벗어난 신성한 장소와 신화를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역사 속에서 파란색은 고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신성한 대상을 표현하는 색으로서가 아니라, 파란색의 원료가 되는 광석이 매우 귀하고 비쌌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파란색은 고귀한 대상을 표현하는 색으로 채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2) 청록산수 관서명승도첩의 ‘묘향산’ 사진. 청계천문화관 제공
파란색이 갖는 기호의 이미지는 역사의 흐름을 따라 형성된다. 마치 물이 흘러가면서 물속의 물질을 돌로 응결 시키는 경우처럼, 삶의 관행에 따라 의미가 부여되었던 기호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문화적 상징을 담게 된다. 어떤 기호는 약속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1) 파란색이라는 기호는 원래부터 신성한 색이 아니었고, 단지 비싼 안료였기 때문에 신성한 존재를 표현하게 되었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파란색은 신성함의 기호와 상징이 된 것 이다.
도자 회화에서 널리 알려진 장르 가운데 하나인 청화모란도는 모란을 파란색으로 표현한다. 하얀 도자기 위에 채색된 값비싼 파란색 안료로 칠해진 풍성한 모란은 복의 상징으로서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기원하는 복이 이미 실현된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과 조선에서는 하얀 도자기 위에 채색된 청화 모란도가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중세 이래 유럽에서 ‘섞는다’는 것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중세 문장학의 대가이자, 상징학 및 색채분야 전문가인 미셸 파스투로Michel Pastoureau, 1947∼ 가 말하는 ‘혼합에 대한 혐오’인 것이다.2) 유럽문명이 혼합에 대한 혐오를 가졌던 것처럼 도자 회화, 특히 청화도에서는 오로지 파란색 안료만을 사용할 뿐 다른 색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했다. 복을 기원하는 신성한 파란 상징에 다른 이미지를 섞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도자 회화는 기복적인 수단이라기보다 미적 감상의 대상이며,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투영하는 대상이 된다. 그래서 과거와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청화 모란도에 파란색 이외의 색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활짝 피어난 모란과 시들어 가는 모란, 나이 든 모란과 어린 모란 그리고 다양한 모란에 투영된 다양한 마음들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청화의 성격을 가지면서도 다른 색의 도입을 시도하는 것이 필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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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르주 장, 『기호의 언어』, 김형진 역, 시공사, 1997, 103쪽.
2) 마쓰다 유키마사, 『눈의 황홀』, 송태욱 역, 바다출판사, 2015,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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