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9. ~10. 31.
더블트리 바이 힐튼 서울 판교 수호갤러리
빛을 투영시켜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다

흙을 종이처럼 자르고, 붙이고, 구부려 간결한 면과 선으로 구축한 작품을 만드는 이흥복 작가의 개인전이 열렸다. 도자 같은 회화, 회화 같은 조각의 작품들은 도예와 회화의 경계를 허물며, 흙의 한계를 지우지 않고 무한한 표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뉴욕에서 공부하고 작업하며 삶에 대한 극적이고 뚜렷한 대비를 온몸으로 느꼈던 이흥복 작가는 그곳에서 표현의 자유를 체득하는 시간을 보내며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흙이라는 재료의 물성과 작가가 개입할 수 없는 불의 시간인 번조의 한계를 벗어나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으로 도예를 확장하고, 회화와 조각의 전통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작업을 추구하고 있다. 유학 시절 시작하게 된 도자기의 평면화 작업은 이러한 자유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 종이를 다루듯 흙을 원하는 형태로 오리고, 여러 모양의 조각들을 붙여 한 덩이의 전체를 만드는 작업은 회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빛과 그림자에 의해 완성되는 반입체 구조를 띤다. 제각각의 모양을 한 조각들은 간결한 선과 면, 흰색 입방체 유닛과 함께 철저하게 계산된 배열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며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상기시킨다. 작가가 유학 시절 느꼈던 삶의 대비는 작품 속에서 양각과 음각, 비움과 채움, 차가움과 따뜻함, 밝음과 어두움 등 상반된 요소들로 조화롭게 표현된다.

「중첩된 시간」 113×106×5cm | Ceramic on panel | 2025
최근 작가는 빛의 개념을 이용한 작업 에 열중하고 있다. 빛은 존재 자체로 는 형태가 없지만 공간이나 사물에 작용하면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존재의 형태를 보여준다. 작가는 구체적인 형태를 지니지 않은 빛을 가시화하기 위해 작품 속 직접적인 묘사를 하지 않는 대신, 자연 현상에 따른 자발적인 움직임과 형상을 찾아볼 수 있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빛’이라는 요소는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작품에 투사된 빛은 요철의 깊이에 따라 긴장과 완화를 반복한다. 작가는 점, 선, 면, 원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조형 언어를 바탕으로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과 삶의 단청을 더듬어 가는 작업을 선보였다. 얇고 푸른 도판 조각에는 안료 농도의 차이를 두어 변하는 시간을 보여주고, 펭귄을 이미지화 한 기하학적 형태들의 반복된 배열을 통해 중첩된 시간을 보여준다. 단순한 조형 속에 응축된 이미지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흔적을 담아내며, 우리에게 삶을 돌아보게 하는 통로로 작용한다.

「청산에 살으리라」 75×98×5cm | Ceramic on panel | 2025
사진. 수호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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