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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월호 | 나의 작업세계 ]

김유주 Migration
  • 김유주 작가
  • 등록 2025-02-07 15: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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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gration」 21.5x10.5x16cm


벗어나야 하는 관성

도예는 가장 원초적인 재료를 다루는 예술이다. 의지로 완전히 제어할 수 없는 불의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도예의 모든 과정은 느린 걸음으로 진행하는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며, 그전까지 나의 행위에 대한 결과를 확인할 수 없는 ‘소성’이라는 극한의 과정은 물성이 완전 히 변화되는 매우 위험한 과정이기도 하다. 도예 작업의 이 느리고 위험한 특성 때문에 도 예가는 늘 기술적 극복에 대하여 많이 고민하게 된다. 나 역시 습관처럼 어떻게 만들면 실 패하지 않을까에 대한 생각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건조와 불의 시련에서 살아남기 위해, 실패하지 않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았다. 기술이 훌륭하고 재료를 잘 통제하여 실패가 적은 작가가 훌륭한 작가라고도 생각했다. 

‘어떻게’에 대한 답만을 찾았던 것 같다.


「Migration」 21.5x10.5x16cm


단초와 전환

나는 짧지 않은 기간 주로 슬립 캐스팅을 했었는데, 언젠가부터 흙과 나 사이에 늘 개입 하던 석고 형틀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전에 쓰던 흙과는 다른 물성을 가진 흙이 궁금했고, 형틀이 만드는 작업이 아닌, 손이 생각하고 만드는, 흙의 촉감을 손이 느끼는 작업이 하고 싶어졌다.

조형토를 쓰게 되면서 차츰 적응되니 이전의 경험치를 새 작업에 응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기물의 골격은 튼튼한 조형토로 세우고, 외형은 아름다운 색을 가진 자기 소지로 마무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화장토Engobe 기법에서 화장토의 영역을 미감을 위해 표면에 얇게 바르는 차원을 넘어 구조의 일부로까지 확장하는 것이었다. 비교적 수축률이 적은(약 8~9%) 조형토로 뼈대 기물을 만들고, 비교적 수축률이 큰(약 12~14%) 자기소지로 표면을 겹겹이 발라 살을 입혀 보았다. 그런데, 두 소지의 물성이 완전히 다르고, 가장 큰 문제인 수축률의 차이가 있으므로 이 두 소지는 소성 후 까지 결합하기가 쉽지 않다는 통념이 있다. 소성온도 또한 같지 않아 대개의 자기소지는 조형토보다 높은 온도로 소성한다. 수축 률과 소성온도의 차이 때문에 한 작품에 함께 사용한 두 개의 다른 소지는 불의 시련을 겪은 후 바램과는 다르게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남는다. 유약 혹은 융제를 사용하여 자기소지의 융점을 낮추거나, 두 소지의 간극을 메꿔줄 매개제를 바르는 등 여러 화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뼈대보다 더 많이 수축 해야 하는 자기 소지는 붙어있지 못하고 뜯어지거나 벗겨져서 그 무게로 내려앉는다. 물성 차이와 불의 힘으로 진행하는 이 실험적인 과정은 건조, 기온, 습도, 진행 속도, 소성 시간, 가마 안의 환경 등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으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오는 결과물은 늘 예측을 벗어나기 일쑤였지만, 서로 다른 두 재료가 충돌하고 화합하는 과정을 오롯이 보여주는 풍성한 질감은 무척 자유분방하고 흥미로웠다. 이 의외의 아름다운 결과물들이 나에게 다음 나아갈 방향에 관한 어떤 단초를 던져주는 것 처럼 느껴졌다.

오랜 실패와 실험의 기간을 겪으며 이 작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도예의 모든 과정과 재료는 통제하여 이겨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흙이라는 재료는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존재이며, 작가는 재료의 생각을 존중하고 믿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나에게는 불의 힘이 늘 두려움의 대상 이었는데, 불의 힘, 불의 힘에 의존할 수 있는 것이 도예가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임을 또한 알게 되었다. 나는 과거에 재료를 통제 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조금은 더 느슨한 마음으로 재료를 다루고, 재료 스스로 불과의 협력을 도모하도록 덜 통제하고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기로 하였다. 

통제하는 자에서 관리하는 자로…

‘어떻게’를 묻는 생각에서 전환하기로…


「Migration」 35.5x18x24.5cm


사진. 작가 제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5년 1월 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온라인 정기구독 포함)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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