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7. ~3. 14. 수애뇨339
굽과 합
굽은 그릇의 밑바닥에 붙은 나지막한 받침을 가리킨다. 본디 다른 존재를 받쳐 주거나 돋보이도록 만들어졌기에 다른 존재와 더불어 있어야 그 가치를 발한다. 하나의 작은 조각을 가리키는 편片도 홀로 존재한다면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부일 뿐이다. 작은 편들이 모이고 서로 어우러져 하나를 이룰 때 그 가치를 발한다. 이는 사람人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혼자가 아니라 서로 의지하며 합을 맞추 어야 살만한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이능호 작가의 쌓인 굽과 박성욱 작가의 분청사기 합은 이번 전시 주제를 에두르지 않고 직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전시장 안에는 굽과 합이 작품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두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통한 심상의 굽과 합이 존재할 뿐이다.
이능호 (위) 「집-그 이후」 78×77×10cm | ceramic | 2024
(아래) 「집-그 이후」 75×73×42cm | ceramic | 2023
얼핏 보면, 검은 쇳덩어리로 보이는 이능호 작가의 「집」은 전통옹기 제작 기법인 타렴질로 흙가래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두들겨 빚은 작품이다. 커다란 씨앗이나 알의 형상을 떠오르게 하는 이 작품은 위가 막히고 속이 텅 비어 있는데 이는 앞으로 커질 수 있는 생명의 기운을 품고 있다는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신작 「집-그 이후」는 씨앗이 발아하거나 알이 깨지면서 새로운 생명체로 움트는 단계를 형상화한 것으로 덩어리와 투각의 형태를 동시에 담고 있다.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는 듯한 이 작품에서 생명체는 시간이 흘러 날아오르며 벽에 걸린 ‘투각’ 으로 변신한다. 생명이, 삶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능호 작가의 손으로 빚어낸 ‘굽’과 생명의 이야기는 간결하지만, 효율과 성과를 강조하며 사람을 개별화 시키고 고립시켜 가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이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를 반추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박성욱 「탑」 가변설치 | ceramic | 2014
사진. 수애뇨339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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