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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월호 | 나의 작업세계 ]

기록, 기억 그리고 도자기_ 김수아
  • 김수아 작가
  • 등록 2025-05-02 14:21:11
  • 수정 2025-05-02 14: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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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익숙한 것, 사라져가는 것에 애틋함을 느낀다. 새로운 것보다는 오래된 것, 익숙한 것에 마음이 더 끌리고, 그 마음이 소중해서 멀어져 가는 것을 놓을 줄을 몰랐다. 삶 속에서 변화들을 무던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만,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풍경과 기억의 조각들은 마음에 머물러 있다. 학창 시절을 보낸 동네가 재개발로 사라지게 되었는데, 나는 추억할 수 있는 장소가 사라진 것에 대한 슬픔, 아쉬움을 작업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도자 조형 안에서 여러 시도를 하며 고민했다. 이러한 나의 감정을 담아내는 것에 집중하여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이 소성 중 유약의 요변에 의해 변색 되거나 흐릿해지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사실 작품을 통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거나, 이에 따른 개인적 감정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는 희미해지는 감정과 기억을 잠시나마 붙잡아 떠올릴 수 있는,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순간의 행복함을 작업을 통해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나의 작업은 그러한 매개체들을 도자기에 기록해 나가는 과정이다.


《지금서울》전(2025)에서는 서울 구도심 주변 곳곳의 슈퍼마켓들과 지금은 사라진 5개의 슈퍼마켓들 작품을 선보였다. 「5개의 슈 퍼마켓」은 지금은 사라진,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는 장소의 의미로 만든 작업이다. 더불어 누군가가 살아온 곳, 살고 있는 장소에 대한 기억을 기록하고 싶어 서울 구도심 곳곳에 있는 「서울의 슈퍼마켓 들」 시리즈를 그렸다.

현재는 나로 향하던 시선이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어 서울 서대문, 종로 일대를 대상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YMCA」36×25cm | 백자토, 고화도안료, 투명매트유, 산화소성 | 2025


오래된 건축물과 비교적 새 건물의 대비가 나타나는 곳을 그린다.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와 그 자체로도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건물들은 새로 만들어지는 건물들과 중첩되어 계속해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이 장소들의 지금 모습을 도자기에 그려 담아내는 것은 사라질 것들에 대한 기록이며,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장소에 대한 기억을 시각화하는 것이다.

관찰하고 다니는 지역이 확장되다 보니, 그 안에서 나의 이야기를 녹여내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낯선 장소에도 여행을 통해 본인의 이야기가 녹아들 듯이, 나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길을 걸으며 도시 곳곳을 다닌다. 오랜 시간 한 곳에 머무르기 보다는, 걸어 다니면서 건물과 건물 사이의 대비, 색감의 조화, 건축물의 윤곽이 나타내는 아름다움 등을 관찰한다. 때로는 같은 장소를 시차를 두고 여러 번 방문하여 변화하는 장소의 모습을 관찰하기도 한다. 

나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누군가의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장소는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도 자신만의 장소적 기억과 보편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관찰은 단순히 시각적인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를 넘어 대상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에서 비롯된다. 도시 풍경 속에 담긴 시 간과 흔적에 공감하며 변화를 바라보는 마음이 나의 작업을 이끄는 원동력인 것 같다. 

관찰을 통해 발견한 도시의 모습들을 도자기 위에 새기듯 그려낸다. 캔버스나 종이가 아닌 도자기라는 매체를 선택한 것은 도자기의 영속성 때문이다. 도자기의 물성은 사라지는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내기에 적합했다. 시간이 흐르며 모호해지고 퇴색되는 기억은 흙이라는 물성 위에 이미지로서 되살아나고, 1250℃의 고온에서 견고하게 구워져 사라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 안에 기억과 추억에 대한 향수 등 의미가 담긴 도시 풍경 속 건축물, 그 안에 깃들 시간의 켜를 담는다.


「세운상가에서 본 산림동 #1,2,3,4」29×29cm | 백자토, 고화도안료, 투명매트유, 산화소성|

2025



사진. 작가 제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5년 4월 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온라인 정기구독 포함)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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