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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월호 | 공간 ]

김예빈 갤러리 모순 대표 인터뷰
  • 차윤하 기자
  • 등록 2025-05-02 14: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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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미학, 조화를 큐레이팅하다


서울 정동길,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2층 건물에 자리 잡은 ‘갤러리 모순’은 이름 그대로 이질적인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공예와 미술, 기능성과 조형성 사이의 긴장과 융합이 이곳의 정체성이다. 이 공간의 디렉터 김예빈은 갤러리 운영의 전통적인 문법을 과감히 재구성하며, 감각과 철학, 전략과 직관을 오가는 감각적 큐레이션을 지향한다. 특히 공예품에 담긴 손맛과 작가의 철학을 전시 공간 전체에 녹여내는 연출로 신생 갤러리임에도 뚜렷한 정체성과 방향성을 확보했다.

김예빈 갤러리 모순 대표와 100여 년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신아기념관


― Q 갤러리 ‘모순’이라는 이름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언뜻 들으면 다소 부정적인 단어 같기도 한데, 이 단어를 공간의 정체성으로 삼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모순’은 본래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 공존하는 상태를 말하죠. 전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충돌이 아닌 조화의 가능성을 떠올렸어요. 공예와 미술,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처럼 서로 다른 것들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요. 실제로 제가 좋아하는 공간이나 물건들은 다소 이질적인 요소들이 만나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갤러리를 준비하면서도 이 이름을 먼저 정해놓고 시작했죠. 영어로 표기했을 때의 리듬감도 좋았고요.


― Q 갤러리를 설립하기 전에는 브랜드 마케팅과 영화 산업에서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전혀 다른 영역 같기도 한데, 공예전시 기획자로 전향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 맞아요, 대학에서는 경제와 회계를 공부했고, 한국에 돌아온 후로는 브랜드 마케팅, 영화 산업 등에서 일했어요. 특히 영화 관련 일을 하면서 공간과 연출에 대한 감각을 키운 것 같아요. 또 창작자들과 협업하면서 작가의 세계관을 읽는 훈련도 자연스럽게 되더라고요. 그 경험들이 지금의 전시 기획에도 크게 도움이 됩니다. 공예나 예술은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젊을 때부터 조선시대 고가구, 유럽 빈티지 가구, 도자기나 유리 공예를 수집해왔고요. 그런 개인적인 축적이 어느 순간 갤러리를 직접 운영하고 싶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어요. 


― Q 정동길이라는 위치도 독특합니다. 갤러리 운영자로서 접근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이 건물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요?

― 정동길은 서울에서 가장 걷기 좋은 거리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제가 어릴 때부터 광화문 근처에서 자라서 익숙한 동네이기도 하고요. 이 공간은 100년이 넘은 근대문화유산 건물이고, 외관부터가 갖고 있는 스토리텔링이 강해요. 물론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이고 접근성이 쉽지 않다는 단점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런 장소적 기억성을 중요하게 봤어요. 한 번 방문한 사람이 오래 기억하는 공간, 그게 브랜드의 첫 단추라고 생각하니까요.


― Q 전시 기획 시, 향, 음악, 가구까지 직접 연출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구성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 작품 감상은 단순히 시각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간의 조명, 향기, 배경 음악까지 모두 관람 경험을 구성하죠. 예를 들어 나무 작업이 중심인 전시라면 흙냄새나 나무향이 섞인 자연스러운 향을 선택해요. 음악도 리듬감보다는 공간의 질감에 맞게 조율하고요. 그리고 전시 공간의 가구 역시 빈티지나 고가구를 활용해 실제 일상 속에서 공예품이 놓일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하고 싶어요. 전시장을 전시장답게 꾸미는 게 아니라, 생활 공간처럼 느끼도록 연출하는 게 저희 모순의 특징이에요.



― Q 첫 전시로 분청사기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 분청사기는 한국 전통 도자기 중에서도 가장 자유롭고 현대적인 감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법 자체가 즉흥적이고, 형태나 질감이 무척 솔직하거든요. 제가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고요. 모순의 첫 전시는 공간의 방향성과 일치하는 작가군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그 시작이 분청 도예 작가들의 단체전이었습니다.


― Q “작가의 철학과 제작 과정까지 전시한다”는 표현이 인상 깊어요. 실제 기획에선 어떻게 구현되나요?

― 작품만 보여주는 전시에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싶었어요. 작가가 어떤 배경에서 이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 어떤 도구를 쓰는 지, 어떤 마음으로 완성하는지를 함께 보여주고 싶었죠. 예를 들어 도예 작가의 전시라면, 사용하는 흙의 종류, 가마의 특성, 손으로 마무리하는 디테일을 같이 소개합니다. 제작 과정의 사진이나 도구를 전시장에 배치하기도 하고요. 이건 단지 설명이 아니라 감각의 층위를 넓히는 장치라고 생각해요.


― Q 공예와 미술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고들 말합니다. 대표님은 이 경계선을 어디쯤으로 보고 계신가요?

― 아주 어려운 질문인데요. 저는 결국 ‘나 다움’이 얼마나 투영되어 있느냐가 예술과 오브제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생각해요. 똑같은 나무 트레이라도, 작가의 사유와 손맛이 분명히 드러나는 순간, 그것은 예술이 됩니다. 가격도, 관객의 반응도 달라지고요. 중요한 건 작가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 철학을 얼마나 깊이 있게 담아내는가죠.


문순원 가죽공예 작가의 화이트 가죽 작품, 그리고 그 위에 놓은 박성욱 도예가의 분청 다관과 찻잔



사진. 갤러리 모순 제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5년 4월 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온라인 정기구독 포함)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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