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화석은 중앙미술대전(회화)과 동아미술제(입체), 대한민국미술대전 (야조)에서 입상했으며 경기도자비엔날레 국제도자워크숍 및 전시회 참가, 평택국제아트페스티벌 심포지엄에 참여했다. 한국·태국 미술 교류전과 동아방송예술대학교 디마아트센터 초대전을 비롯해 1977년부터 현재까지 1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흙으로 길을 묻고 불에서 이정표를 찾다
12번까지
정화석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한 작품에 10번 이상 불을 때기도 한다. 작품을 가마에 넣고, 불을 올리고, 가마가 식으면 작품을 꺼내어 보고 색을 또 입히고, 다시 가마에 넣는 것을 11번, 12번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화석의 작품은 세계의 어느 도자기 조각보다 더 뜨거운 불을 가득히 그 내부에 품고 있다.
「선돌」 39×23×96cm | 혼합토, 1250℃ 다중유 환원소성
불
인류가 생겨나서 최초의 불을 만났을 때 참으로 경이로웠다. 하늘에서 내리는 번개에 의해 처음으로 불을 보았고 그 불에 의해 흙이 달궈지고 나무가 불타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러므로 불은 인류에게 처음부터 하늘의 뜻이 담긴 신성한 것이었다. 불에 의해 먹는 것을 익혀 먹게 되었을 때 그 뜨거워진 음식 안에 신의 자비가 들어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번갯불에 의해 달궈진 흙덩이가 단단해지는 것을 보고 신의 뜻을 알게 되어, 최초로 토기로 된 밥그릇을 만들었을 때 그 그릇은 그대로 신의 뜻과 말씀이었다.
정화석에게 불은 인류 최초의 불처럼 신성한 것이다. 불의 신성이 경이로워서 작품마다 고온의 불을 심고 또 심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불이 드러내는 신의 뜻과 자비를 더 깊이 경험하고자 1230℃에서 1300℃에 이르는 고온의 불을 때면서 그렇게 여러 번 작품을 가마에 넣는 일을 하는 것이다.
고온
흙이 불을 입으면 색이 변한다. 흙 내부의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서 미묘하게 다른 다양한 색을 낸다. 그 색은 흙이 내부에 품고 있던 색이고 불이 밖으로 드러나게 모신 자연의 색이다. 불의 온도가 높아질수록 더 깊이 흙이 품고 있던 색이 드러난다. 더 깊고, 더 고요하고, 더 무겁고 더 신비로운 색 이 나타난다.
정화석은 작품에서 흙이 깊이깊이 품고 있는 색을 드러내 주길 원한다. 안료에 의한 색이 아닌 자연의 색이면서 동시에 신의 뜻과 자비가 서린, 신비로운 색이 나타나 주길 바란다. 그래서 1230℃에서 1300℃에 이르는 아주 높은 온도의 불을 피워 올린다. 고온으로 불을 때면 가마에서 큰 크기의 작품 은 주저앉을 확률이 아주 높아서 일반적으로는 작가들이 시도하지 않는다. 작품의 색과 질감을 위한 고온의 불 때기를 하는 점에서도 정화석의 작업은 귀한 작업이다.
「벚꽃 바람에 날릴 때」 56×38×94cm | 혼합토, 1230℃ 무유 환원소성
환원
환원된다는 것은 더욱 본질에 가까운 것으로 되어 간다는 것이다. 보통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모든 존재의 본질적인 본래의 모습은 지금의 형상을 띠기 전의 모습이기도 하다. 풀과 나무는 그 씨앗이 더 본질적인 것에 가깝고 곤충과 동물은 세포 하나가 더 본질적인 모습일 것이다. 물론 대자연의 기본 물성들인 물, 햇빛, 공기, 불, 흙 등이 이 세계의 형상을 띤 존재들의 근원이고 과학적으로는 분자, 원자, 소립자 등이 그것일 것이다.
정화석은 도자 조각 작품에서 흙이 더욱 본질적인 것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흙이 되기 전의 바위의 모습으로 돌아가 더 본질적으로 흙의 물성을 더욱더 잘 드러내 주길 원한다. 흙의 질감과 색깔이 더 잘 보이길 바라고 흙이 주는 사유의 깊이와 고요 그리고 평온함을 더욱 잘 느꼈으면 한다. 그리하여 정화석의 모든 도자 조각은 환원 불에 의한 것이다. 흙이 환원이 되면 안료의 화려한 빛깔이 아니라 흙이 본래 가지고 있는 흙의 물성에 의한, 묵직한 색과 자연스러운 질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산소의 도움을 받는 산화에 의한 불은 도자에서 안료의 색을 비교적 쉽게 의도하는 대로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환원에 의한 불은 작품의 색과 질감을 미리 추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가들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환원 불 때기를 선택하지 않는다. 정화석은 흙의 물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환원 불 때기를 하는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 작품의 색을 위해서도 대부분 여러 가지 흙을 섞어 안료 대신 사용해 왔다. 선명한 색깔과 반짝이는 광택이 나타나는 산화 불에 의한 공예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보다는, 환원에 의한 무광택의 무거운 색과 자연스러운 질감이 나타나서 흙의 물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을 더 원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정화석의 작업은 귀하다.
바위
최초의 인간들은 바위와 돌 속에 불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번개가 바위와 나무에 떨어질 때 나무는 불에 타 재가 되지만 바위와 돌은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번갯불이 바위와 돌 안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 이래로 바위는 신성한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은 마을 가까이에 있는 큰 바위나 형상을 띤 바위를 신성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종교의 대상을 구체적인 인물 모습으로 조각하는 시대가 열렸을 때, 바위 안에 살고 계신 신이나 경배의 대상을 바위 밖으로 꺼내어 모신다는 생각으로 돌을 쪼아 조각하였다. 그리운 님의 모습을 바위 속에서 불러내어 늘 마주하고 함께하는 석공도 물론 있었다.
정화석은 풍화된 바위의 신비로움과 신성함에 매료된 작가이다.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흙덩이가 그 안에 신의 뜻과 자비가 살아 숨 쉬는, 거친 피부를 지닌 신성한 바위가 되기를 염원한다. 흙덩어리가 바위가 되고, 그 바위 안에서 신과 그리운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내 그 뜻과 자비를 펼칠 때까지 정화 석은 번갯불과 같은 불길 속을 몇 날 며칠이고 떠나지 않는 것이다.
「겨울기타(아내의 초상)」 47×70×76cm | 혼합토, 1230℃ 다중유 환원소성
사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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