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9. ~5. 17. 노원전통문화체험관 다완재
주최·주관 갤러리 피카고스
후원 노원구청

전시 전경 Ⓒ갤러리 피카고스
흙으로 그리는 조각가 우승보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까지 약 200년간 유행한 분청사기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청자, 조선시대의 백자와 비교되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당시 송나라와 고려만이 1300℃로 흙을 구워 깨뜨리지 않고 그릇으로 구워내는 기술, 즉 자기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또 베트남이 더 낮은 온도로 투박하게 구워내는 토기 기술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귀한 도자기는 왕과 귀족이 사용하였고, 크기, 모양, 문양부터 흙의 종류에 이르기까지 관청의 철저한 관리 감독하에 주문 생산되었다.
그러나 분청사기가 만들어지던 시기는 예외였다. 관의 지배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이 시기에는 평민들도 도자기를 사용할 수 있었고, 작가들은 자신의 철학과 미학을 도자기에 담을 수 있었다. 조선 세종 때에는 작가가 낙관을 남기는 것도 허락되었다고 하니, 도공이 아닌 도예가로 대우받기도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배경 속에서 분청사기 작가들은 투박함 속에서도 창의적인 작품들을 자유분방하게 작업할 수 있었고, 상감, 인화문, 조화, 철화, 덤벙, 귀얄, 박지 등 다양한 기법들을 사용해 박진감 넘치는 작품들을 쏟아내게 된다. 우승보 작가가 청자, 백자를 거쳐 결국 분청을 선택한 것도, 근래의 젊은 도예가들이 유독 분청을 선택하는 것도, 작가적 상상력을 폭넓게 허용하는 분청만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전시 전경 Ⓒ갤러리 피카고스
전시 제목 《분청사색 粉靑思色》은 규격화되고 정형화된 형식을 벗어나 자유롭게 사색하는 작가의 유희를 표현한다. 이번 기획전에서 우승보는 한국의 멋을 현대 미술과 접목시키며 40년 간 쌓아 올린 대표작들과 다기茶器를 선보였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조상들이 만든 분청사기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일명 ‘도자기 전쟁’이라 불리는 임진왜란으로 거의 모든 분청사기와 차도구들은 일본에 도둑맞았다. 당시 일본은 송나라로부터 들어온 차문화를 몹시 사랑하였고, 차회에 초대받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했다. 조선인이었던 센 류쿠大林善育를 차 선생님으로 모시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 역시 차를 무척 좋아했고 일본에서는 구하기 힘든 찻그릇과 도자기를 갖고 싶어 했다. 조선을 정찰하고 온 부하가 “조선은 개밥그릇도 도자기입니다.”라고 해서 조선에 쳐들어왔다는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가 전해져오고 있다.
도자기를 모두 약탈당하였을 뿐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약 3만 명의 도공이 끌려가, 7년간의 전쟁이 끝난 후 조선 왕실에서 잔치를 하려 했으나 마땅한 그릇이 없었다고 한다. 이때 도자기와 함께 가지고 간 것이 우리의 차도구와 차문화이다. 일본 암시장에서는 조선 화로와 같이 우리 것임에도 정작 우리에게는 생소한 도구와 서적들이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차문화 말살이 일제시대에 한 번 더 있었다. 차례는 차로 제사 지내는 우리의 전통 풍습이다. 고귀한 차의 향을 높이 올려 신과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는 차로 제사 지내는 것을 금지하여 술로 지내게 하였다. ‘너희 같은 미개한 민족에게 차문화는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왕실의 접빈 다례가 남아있었다. 조선의 마지막 상궁에게 이것을 계승받고, 동다송(東茶頌 ; 조선후기 승려 초의가 우리나라 차에 대하여 송頌 형식으로 서술한 불교서, 다도서)을 찾아 번역하고 초의 선사의 집을 다시 짓고 가마를 지어 구전으로만 남아있던 전통 찻그릇을 복원한 이가 명원 김미희 여사이다. 또한 김미희 여사는 명원문화재단을 설립하고 20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 전통 다례법을 궁중다례, 사원다례, 접빈다례, 생활다례로 정립하여 1979년 차학술회를 통해 공표했다. 2대 명원 이사장인 김의정 이사장은 안동에 토종 차밭을 일구고, 매년 명원세계차문 화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차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후로 다양한 차 연구원과 학술재단이 새로이 설립되었다. 일본이 그토록 훔치고 말살하려 애썼던 우리의 차문화는 이렇게 이어지게 되었다.
「분청사기지두초문」 55×55×46cm Ⓒ우승보
사진. 갤러리 피카고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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