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언어, 전통의 미래를 말하다
경북 문경의 가을 하늘 아래, 세계 각국의 도예가와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장작가마의 효용과 실용적 발전 방안을 주제로 열린 2025 문경국제도자심포지엄은 전통 도자 기법의 현대적 계승과 미래 지향적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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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주요 발표 내용
•제1주제_ Language of Fire | Randy Johnston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석좌교수)
•제2주제_ 장작가마에서 PO2 에 의한 도자 발색 특성 | 이병권 (명지대 교수)
•제3주제_ 비젠야키에서의 장작가마의 역할과 정신 | 金重有邦 (일본 오카야마현 중요무형문화재)
•제4주제_ 가마의 발생 배경과 조선 철화분청사기 | 이재황 (한남대 교수)
•제5주제_ 미래지향적 장작가마 번조 | 福建建盞과 龍泉青瓷 - 金文伟 (중국 경덕진대 교수)
•장 소_ 문경새재 Petro Hotel 1층 세미나실
부대행사
•문경 전통장작가마 워크숍 10. 22. ~10. 23.
•문경국제도자교류전시 10. 21.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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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교의 랜디 존스톤Randy Johnston 석좌교수는 기조발표 ‘불의 언어 Language of Fire’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장작가마가 갖는 의미를 되짚었다. “21세기, 왜 우리는 장작불을 지피는 지난한 고초를 감내하는가?” 존스톤 교수의 질문은 본질적이었다. 그는 장작가마가 실용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지만, 바로 그 불확실성이 현대 도자 예술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장작가마는 미학적 선택입니다. 가마에 둘러앉아 장작을 던져 넣고 옛사람들처럼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고대인들의 영적인 세계와의 연계를 추구하는 동시에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추구합니다”고 설파했다.

랜디 존스톤
명지대학교 이병권 교수는 ‘장작가마에서 PO2에 의한 도자 발색 특성’을 주제로 과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그는 지르코니아 산소 센서를 직접 제작하여 장작가마 내부의 산소농도를 4단계로 구분, 청자의 발색 차이를 실험했다.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동일한 원료를 사용하더라도 산소분압(PO2)에 따라 황갈색 녹청자부터 비색청자까지 다양한 색상이 구현되었다. 이병권 교수는 “미래에 주목받는 도자기 생산 가마는 불확실성이 높은 장작가마 일 것”이라며 “AI가 정밀한 도자기를 생산 하는 시대에, 장작가마의 가변성이야말로 경쟁력”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오카야마현 중요무형문화재 카네시게 유호金重有邦 선생은 비젠야키備前焼의 정신성을 소개했다. 비젠에는 예부터 “일 토, 이 가마, 삼 세공”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도토의 선정, 가마에서의 소성이 기법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장작가마는 작가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불이라는 자연의 힘을 받아들임을 가르쳐 줍니다. 7일에서 13일간에 걸친 장기간의 불 때기가 비젠야키 특유의 경치景色를 만들어냅니다.” 카네시게 선생은 장작이 탈 때 생기는 재가 고온에서 그릇 표면에 부착하여 만들어내는 자연유自然釉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카네시게 유호
한남대학교 이재황 교수는 조선시대 계룡산 철화분청사기를 조명했다. 15~16세기 중기, 계룡산에서 대량 생산된 철화분청사기는 익살스럽고 우화적인 문양으로 회화성이 깊은 도자기다. “장작가마의 소성 과정은 결코 쉴 틈 없을 정도로 힘들고 벅찬 노동시간의 연속입니다. 경주 건천리의 해겸 김해익 장인은 2016년 비취색 청자소성 특허(특허번호: 특허제10- 1682953호)를 받았습니다.” 이 교수는 총 19일 동안의 가마 소성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며, 전통 장작가마 기술의 과학적 원리와 장인정신을 설명했다.
경덕진대학교 진원웨이金文伟 교수는 복건 건잔과 용천 청자를 중심으로 중국의 장작가마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통가마 도자기가 재주목 받고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가 시골로 이주해 장작 소성을 직접 체험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장작 소성은 개인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인간관계의 끈끈함과 자연의 안정감을 동시에 추구하는 훌륭한 경험입니다. 현대인의 정신적 결핍과 불안정한 사회관계를 치유하는 기회가 됩니다.” 진 교수는 용천과 건양 지역의 장인들이 “토유토성土有土性, 수유수성水有水性, 화유화성火有火性”의 철학을 실천하며,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후 종합토론에서는 명지대 이병권 교수의 좌장 아래 열 띤 논의가 펼쳐졌다. 양구백자박물관 정두섭 관장, 미국 Phipps Center의 Ben Gavin, 문경 도자기 명장 박연태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장작가마의 비효율성이 오히려 미래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데 공감했다. 특히 AI 시대에 인간의 손길과 불의 우연성이 만들어내는 ‘불완전한 완벽함’의 가치가 더욱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10월 22일부터 23일까지는 문경 전통 장작가마 워크숍이, 10월 21일부터 11월 20일까지는 문경국제도자교류전시가 이어진다.

문경국제도자교류전시 전경
사진. 명지대학교 세라믹디자인공학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