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장 허진규는 자타가 공인하는 ‘영남옹기’의 계승자다. 옹기에도 지역색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다’이다. 교통망이 지금처럼 발달되기 전까지만 해도 전국의 옹기는 각 지역마다 뚜렷한 지역색을 가지고 있었다. 지역의 독특한 기후와 환경 속에서 저장 식품을 잘 보호할 수 있도록 적합한 모습으로 진화돼 온 것이다. 그러나 도로의 확충과 수송수단의 발달, 옹기 산업이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추면서 옹기의 고유한 지역색은 점점 퇴색되기 시작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영남 전통 옹기의 보존과 기술의 계승은 시대 조류에 편승하지 못하는 멍청한 짓과 다름이 없었다. 그는 당시의 옹기 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졸업 무렵부터 옹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친의 공방에서 일을 배웠지만,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욕에 마을에 있는 다른 장인 아래서 본격적인 옹기수업을 받는다. 당시의 옹기공방은 20여명의 도공들이 철저한 분업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옹기에 처음 입문하는 도공에게는 당연히 청소나 공방정리 같은 뒤치다꺼리가 맡겨졌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옹기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흙을 수비하고 타래를 뽑는 일도 당연히 자신
의 몫이었다. 이런 과정이 10여년, 그 공방을 거쳐간 수많은 물레대장들로부터 틈틈이 영남옹기의 기술을 전수받게 됐고, 20대중반에 높이 1미터가 넘는 영남대독을 자유롭게 성형하기에 이른다.
옹기의 성형방식은 오랜 시간동안 각 지역 옹기장인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수된 것인 만큼 어떤 지역의 방식이 더 우월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영남옹기의 성형 방식은 넓은 판을 쌓아 붙여서 제작하는 호남옹기와는 크게 다르다. 영남옹기는 지름 6~7cm정도의 점토 타래를 3m정도의 길이로 늘려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이 때 타래를 쥐는 손과 물레는 돌리는 발의 미세한 움직임, 온몸을 활용하는 균형감각, 모든 것이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혀야만 성형이 가능한 기술인 것이다. 어느 정도 타래를 쌓아 올려 린 후 수레와 조막으로 두드려서 항아리 형태를 만들고, 안 건개와 바깥 건개로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다. 이런 성형기법은 토기의 출현 이후 지구상에 등장한 어떤 기법보다도 신속하게 큰 기물을 성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09년 1월호를 참조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