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공예를 위하여 : 2009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 김주원 2009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수석큐레이터
‘2009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설정한 출발선그런데, 그 혹자들의 평가에는 어떤 기준이 작동하는 걸까? 내가 생각하기에 적어도 ‘공예’는 이렇다는 용어 풀이, 개념 설정이 아닌가 싶다. 2007년 탤런트 안재환, 정선희가 하던 홍보대사를 디자이너 이상봉, 시인 도종환이 해야하는 2009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의 ‘공예’는 여전히 ‘조화의 손’(1999), ‘자연의 숨결’(2001)이며, ‘쓰임’(2003)이자 ‘유혹’(2005), ‘창조적 진화’(2007)이어야 했던 것은 아닌가.
지난 역사 속에서 미술, 아니 구체적으로 회화, 조각의 진화 방식을 보면, 회화는 회화 아닌 것의, 조각은 조각 아닌 것의 반대항으로 가득찬 조건을 끌어안는 순수 부정적인 형식으로 변모해 왔다. 사진기 발명 후의 추상회화의 발달이나 이브 클라인의 신체를 붓으로 한 회화, 해프닝이 그러했다. 뒤샹의 레디 메이드된 변기가 <샘>이된 국면과 도날드 저드의 정직한 큐브가 가구이자 조각인 자체가 그러했다. 단언컨대, 공예가 순수미술, 설치미술 혹은 디자인과 구분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표면적 현실, 그 서구적 양상을 디스플레이 하고자 기획된 비엔날레 전시는 무의미하다. 서구가 그러하니 세계화에 발맞춰야 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현대적 삶의 매체는 그것이 공예이건, 회화, 조각, 테크놀로지이건 어떤 고정된 실체나 영역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사회적 관계항이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09년 8월호를 참조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