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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가 보내는 편지 두번째 천경희 도예가가 아버지 천한봉 도예 명장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편집부 2010-11-16 16:34:48

아버지께
새벽2시, 방문이 열리면서 팔순이면 하루 종일 앉아 있기도 힘든 연세인데, 함께 작업해 온 그 시간이 무색하게 손수 열 두세시간 동안 불을 때시는 열정은 젊은 저로써도 흉내내기 힘든 일입니다. 가끔은 아버지의 작업방식에 투정도 부려봅니다. 요즘 작업방식대로 하면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데, 옛날 아버지가 배웠던 방식과 도구를 사용하니까 발전도 없고 실패율도 높고 마냥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이 습관이라면 긴 세월 몸으로 익혀 머리보다 몸이 먼저 행하도록 하려는 가르침이었다는 것을...
아버지! 지금은 황혼의 뜨락에 떨어진 가을날 나뭇잎처럼 깊게 파인 주름과 물레를 돌리시느라 닳아 없어진 손가락 지문으로 저는 이렇게 자라왔습니다. 제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고 다시 후손들이 저에 닳은 손바닥을 보면서 할아버지의 삶을 생각할 수 있도록 아버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가끔 뜰 앞의 개울물보다 느린 걸음걸이가 힘겨워 보이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아버지의 열정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오로지 건강하셨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먼 훗날 장작가마 옆에 앉아 서리내린 흰머리를 쓸어올리며 장작을 던지시던 아버지를 회상하는 일이 저에게는 행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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