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원철
일공공디자인스튜디오ONEZEROZERO DESIGN STUDIO 대표
‘컨셉’의 홍수
우리는 컨셉이라는 단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만나게 되는 TV, 라디오, 각종 인쇄물 속 광고에서 자연스레 느껴지는 컨셉, 매일저녁 만나는 드라마 속 컨셉부터 직장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바삐 다듬기 시작한다. 모르긴 몰라도 끈임 없이 좋은 디자인이 창조 되는 것을 보면 위 방식의 베리에이션은 끝이 없어 보인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곱씹어야 할 한 가지는 단순히 ‘그냥 컨셉’만을 만들길 원하는 디자이너는 없을 것이란 점이다. 그렇다면, ‘가치 있는 컨셉’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의 정보 주입과정이 필요할까?
시계(70p 사진)는 필자가 디자인한 「She always makes him wait」라는 긴 제목의 벽시계이다.
이 디자인에 주입된 정보 요소를 나열해 보자면,
1) 시침이 30도 정도 회전 할 때 분침은 360도 회전한다.
2) 직간접적 경험으로 아무래도 세심하게 외출준비를 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약속시간에 늦는 경우가 많더라. 정도일 것이다.
이 두 가지 경험과 정보는 시계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의 머릿속에서 이런 정도의 프로세스로 융합이 되어간다.
시침이, 움직임을 감지하기 힘들게 천천히 돌아가는 모습과 분침이 시침에 비해 바삐 시계방향으로 움직이는 꼴이 마치 시침이 분침을 기다리는 모습 같구나. 여기에 과거의 데이트 경험을 덧붙여 시침에 데이트에 먼저 나온 남자를, 분침에는 이런 저런 외출 준비로 늦어버려 분주히 약속장소로 걸어가는(절대 뛰어가진 않는다. 하하, 조크.) 여성을 비유 대입하면 꽤 재미있는 컨셉이 되겠는걸!
이렇게 가닥이 잡힌 개념에 어울리는 옷을 입혀 완성된 이 제품은 필자의 소박한 브랜드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소비자나 관람자로부터 좋은 피드백으로 디자이너로서의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사무실 운영에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위 디자인 속 컨셉을 분석해 정리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겪어봤음직한 일반적인 감성이 이른바 차별화된 방식으로 발현 되었을 때 보다 많은 소비자들의 보다 깊은 감성을 자극하는 창의적 컨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컨셉의 완성(디자인에서의 밸런스)
이렇게 다양한 경로로 완성된 창의적 컨셉으로만 디자인이 빛난다면 참 좋겠지만 당연히 아직 많은 과정이 남아있다. 제품 출시 직전까지 미적인 작업부터, 전문적인 지식과 노하우가 필요한 재료 선택과 제조업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처럼 인고와 희열이 공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임의로 통칭해 ‘컨셉 이후 과정’이라 하자. 이 기간동안 완성된 컨셉은 마치 유리잔 속 물과 같아 보인다. 비유를 걷어내고 설명하자면 그만큼 좋은 컨셉은 소비제로 탄생하기 전까지 손상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예상치 못한 제3의 외부요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원인은 디자이너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컨셉’과 ‘컨셉 이후 과정’간의 밸런스를 잡지 못했을 때이다. 디자인에서 컨셉의 입지는 큰 그림 혹은 원천으로, 그 역할을 다 하고 그 이후 일련의 작업들은 이를 돋보이게 어시스트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각 요소들의 상위에서 서로들의 위치선정을 해주지 않는다면 빼어난 미모를 망치는 의상을 입은 인물,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를 걸어준 뭔가 아쉬운 디자인으로 그쳐버릴 수 있다.
지켜내야 할 훌륭한 컨셉이라면, 형태, 컬러, 재질 등의 요소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최초의 컨셉을 퇴색시키지 않도록 하여 외려 돋보이게!
개념적 부분을 삭제하고 그 외의 요소 중 일부에 치중하고자하는 디자인 이라면 선택한 요소 하나에 과감한 집중을 하는 것이 ‘컨셉’의 바람직한 위치요, 기분 좋은 완성일 것이다.(예를 들면, 재질의 촉감과 운동감각 등이 부각된 햅틱Haptic 디자인처럼)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1.05월호를 참조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