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2025.04월호 | 특집 ]

[특집III] 이름에 담긴 그릇 - 박물관 도자기 명칭의 세계
  • 강경남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 학예연구관
  • 등록 2025-05-02 15:14:49
  • 수정 2025-05-07 12:12:15
기사수정

그릇에 이름을 붙이는 일

박물관 전시실에서 도자기의 명칭은 단순한 ‘이름’ 그 이상입니다. 우리는 전시실에서 「백자청화운룡문호」<도1> 혹은 「청자상감운학문매병」<도2>이라는 긴 이름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얼핏 보면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이 명칭 하나에 도자기의 재료, 기법, 문양, 시대, 기능까지 모두 응축되어 있습니다. 즉, 도자기의 명칭은 일종의 압축된 정보이며, 그릇 하나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중요한 언어입니다.

명칭은 단순하게 형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된 맥락과 사회문화적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 소장된 수많은 도자기 각각은 고유한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제작자도, 사용자도, 정확한 쓰임새조차 잊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명칭은 도자기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예를 들어, ‘매병(梅甁)’이라는 명칭은 목이 좁고 몸체가 넓어 매화를 꽂기 적합한 형태에서 유래되었지만, 단순히 꽃병으로만 사용된 것이 아닌 향음례(鄕飮禮)나 제사 등에서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는 점까지 드러냅니다. 

명칭을 정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제작 시기를 반영하되, 후대의 인식도 고려해야 하며, 용도와 문양, 유약, 기법, 보존 상태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특히 동일한 유형의 도자기라도 문헌 기록이나 발굴 유적의 성격에 따라 명칭이 달라질 수 있어 전시기획자나 연구자는 가능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명칭을 고민하게 됩니다. 잘못된 명칭은 유물에 대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으며, 특정한 해석을 고착시키는 위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명칭이 관람객에게 다가가는 첫 언어라는 점입니다. 박물관 전시실에서 전시품과 그의 이름이 인쇄된 설명카드는 관람객이 유물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너무 학술적이거나 모호한 명칭은 오히려 거리감을 만들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보다 이해하기 쉽고 친근한 명칭을 사용하거나 유물 설명에 있어 용어와 표현을 좀 더 쉽게 풀이하여 설명을 제공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자기의 명칭은 단지 식별을 위한 용어가 아니라, 하나의 해석이며 이야기입니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 유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맥락에서 이해할지를 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자기의 명칭은 단순한 설명 내용이 아니라, 유물에 부여하는 새로운 생명입니다. 큐레이터로서 그 이름 하나하나에 더욱 신중해야 하는 이유 입니다.


<도1> 「백자 청화 구름 용무늬 항아리 白磁 靑畫 雲龍文 壺」 조선 18세기 | 높이 53.9cm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릇에 이름을 부여하는 일의 기준과 원칙

도자공예품의 명칭은 단순히 유물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를 넘어, 박물관에서 전시·교육·연구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핵심적인 정보체계의 일부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도자기의 명칭을 정할 때 단순한 직관이나 통념에 의존하지 않고, 다층적인 기준과 역사적 근거에 따라 신중하게 명명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선되는 기준은 문헌적 근거와 실증적 자료에 기반한 통일성입니다.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각종 의궤, 고문헌 등에서 사용된 다양한 명칭 중에서도 용어의 일관성과 현대적 이해 가능성을 고려해 대표 용어를 선별합니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 문헌에는 ‘사발’ 을 ‘沙鉢’, ‘砂鉢’, ‘磁鉢’, ‘鉢’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하였으나,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鉢’로 표준화하고, 한글 표기 는 ‘사발’로 통일하여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둘째, 전문성과 대중성을 모두 고려한 병행 표기 원칙을 따릅니다. 박물관은 전문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 청소년, 외국인 관람객까지 다양한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므로, 명칭에는 가능한 한 쉬운 한글 표현을 우선 사용하고, 필요한 경우 한자 명칭을 병기합니다. 예컨대, ‘청자철화연화당초문매병’이라는 용어는 ‘청자 철화 연꽃 넝쿨무늬 매병’ <도3>으로 병기되어 설명문에 함께 사용되며, 시각적 정보와 문양, 기법 정보를 동시에 제공 합니다.

셋째, 유물 명칭은 보통 ‘재질 + 기법 + 문양 + 형태 또는 용도’의 순서로 구성됩니다. 예를 들면, ‘청자 상감 국화문 접시’라는 명칭은 도자기의 재질(청자), 장식기법(상감), 문양(국화), 형태(접시)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 그 유물의 핵심적 특징을 정확히 전달합니다. 명칭 하나만으로도 관람객은 이 도자기가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어떻게 장식되었으며,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를 확인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학계와의 조율을 통해 명칭의 공신력을 확보합니다. 명칭은 자의적으로 정하지 않으며,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회의를 통해 검토·조정 후 확정됩니다. 이 과정에서는 동일한 유물에 대해 기관별 또는 연구자별로 달리 부여된 명칭을 조율하고, 학술성과 전시현장의 실효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 이루어집니다.


<도2>「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매병 靑磁 象嵌 雲鶴文 梅甁」고려 12세기 | 보물 | 높이 30.0cm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5년 4월 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온라인 정기구독 포함)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0
비담은 도재상_사이드배너
세라55_사이드
설봉초벌_사이드배너
산청도예초벌전시장_사이드배너
전시더보기
월간세라믹스
도예마당더보기
대호단양CC
대호알프스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