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SPECIAL FEATURE
이름을 붙인다는 것, 도자용어를 다시 묻다
‘분장’, ‘상감’, ‘순백자’, ‘회청’, ‘슬립’, ‘박지’… 도자 현장에서 매일같이 쓰이는 이 낱말들은 과연 얼마나 정확하고, 또 누구에게나 전달될 수 있을까? 어떤 용어는 시대를 지나며 의미가 뒤섞였고, 어떤 말은 여전히 전문가 사이에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익숙한 언어 같지만, 실제로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막연히 남겨진 채로 통용되고 있는 도자 용어들. 이제는 이 용어들을 ‘이름’답게 다듬고 다시 묻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특집은 도자공예 전문용어의 정리 필요성을 다시 짚고,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탐색의 장이다.
김현아는 전문용어가 일상 언어와 소통하지 못할 때 대중의 이해를 어떻게 가로막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일상어를 활용한 도자용어 정비’라는 실천적 대안을 제시한다. 오영인은 도자사의 핵심개념인 ‘분청사기’라는 용어에 주목해, 그 명칭의 형성과정과 이면에 깔린 인식의 혼란을 짚으며 용어 재정립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강경남은 도자용어가 단지 사전의 문제가 아니라, 기획과 전시, 교육, 나아가 한국 도자문화의 담론 구조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세 편의 글은 각기 다른 시각에서 도자용어를 바라보지만, 결국 하나의 목소리로 모인다. 바로 ‘지금, 우리가 쓰는 이 언어들이 과연 지금의 도자문화를 올바르게 비추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름을 붙이는 일은 사소하지 않다. 그 이름이 무엇을 담고, 무엇을 배제하는지를 다시 살펴야 하는 이유다.
이번 특집을 통해 도자용어가 더 이상 폐쇄적인 전문용어의 울타리에 머무르지 않고, 공공의 문화언어로 다듬어지길 바란다. 도자문화의 미래 세대를 위한 정리를 시작해보자.
기획·정리. 차윤하 기자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고 느끼는 우리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 훔볼트Humboldt는 ‘인간은 언어가 보여주는 데로 세계를 이해한다.’라고 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라 언어를 통해 재창조된 세계라는 뜻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언어는 ‘감각’에도 영향을 끼친다. 볼노오Bollnow는 우리가 무지개의 색을 일곱 가지로 느끼는 것은 ‘일곱’이라는 말의 힘이 작용한 결과라 했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느낄 때, 언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도자기도 언어가 작동하는 세상에선 예외일 수 없다. 사람들이 도자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즉 도자기에 대한 인식과 감정은 이를 전달하는 수단인 도자공예 전문용어에 달렸다.
소통력 큰 도자공예 전문용어의 요건
‘전문용어’란 일상어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사용하는 어휘를 뜻한다. 그래서 ‘전문용어’라고 하면 지레 어렵고 비전문가는 알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주변에서 많은 전문용어를 직접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도자기’라는 도자공예 전문용어는 우리가 식사할 때 음식물을 담는 그릇으로써 발화되고 청자에게 그 의미가 전달된다. 필요에 따라 도자공예 전문용어의 개념을 알고 편히 쓸 수 있어야 도자기에 관한 사회적 관심과 선호의 감정을 높일 수 있다. 도자공예 전문용어의 소통력 크기는 도자 문화와 산업 발전에 밑거름이다.
전문용어는 어려운 말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흔히 쓰는 ‘여드름’, ‘감기’, ‘항생제’ 등도 모두 의학 전문용어다. 전문용어는 그 뜻을 쉽고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이해력과 경제성, 효용성이 요구되는 어휘다. 일반적으로 전문용어는 다음의 네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하나의 용어는 하나의 개념을 지칭해야 한다(일의성). 둘째, 용어만 보고도 그 개념이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을 만큼 명시적이어야 한다(투명성과 명시성). 셋째, 불필요한 정보를 담지 말아야 한다(간결성). 넷째, 동일 범주에 속하는 개념을 지칭하는 용어는 가능한 동일 형식을 갖춰야 한다(일관성). 일견 까다롭게 보이는 요건이지만, 핵심은 전문용어는 이해하기 쉽고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기 편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도자공예 용어는 이러한 요건을 만족하고 있을까. 한국 도자 공예계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모두 함께 관심을 두고 살펴볼 일이다.
쉬운 공공언어 흐름 속에서, 여전히 어려운 도자공예 전문용어
쉬운 공공언어 사용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소통하지 못하는 언어 탓에 공공이 겪는 피해가 큰 탓이다. 도자공예 전문용어도 마찬가지다. 이해하기 힘든 도자공예 전문용어는 도자기에 대해 알고 느낄 기회,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할 문화 향유의 권리를 빼앗는다. 한국 전통 도자공예 용어에는 식민지 시기에 들어온 일본식 한자어가 많다. 도자기를 신체에 빗댄 견부(肩部), 경부(頸部), 복부(腹部), 구연(口櫞), 그리고 골호(骨壺), 철채(鐵彩), 표형(瓢形)ㆍ귀갑문(龜甲文) 등이 그 예이다. 한글 전용 세대인 현대인들에게 이들 한자식 어휘가 친근할 리 없다. 한자어 ‘골호’보다 고유어인 ‘뼈항아리’가 이해하기 쉬운 것은 당연하다<도1>. 어려운 한자어 도자공예 전문용어는 도자기를 멀게 느끼게끔 만든다. 도자공예 용어를 어렵게 하는 것은 비단 한자어 표현뿐만이 아니다. 현대에 새롭게 등장한 기술이나 도구 중에는 한자어가 아닌 외래어가 적지 않다. ‘슬립 트레일러Slip Jiggering Trailer’는 흙물을 담아 마치 치약처럼 짜내어 기물 표면 위를 장식할 때 쓰는 도구이고, 지거링 <도2>은 석고틀의 안쪽으로 점토를 회전시키면서 깎아 그릇을 찍어 내는 성형 방법이다. 둘 다 현대에 와서 사용하기 시작한 도자공예 전문용어로 한자어 만큼이나 어렵다. 뭐든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고치거나 바꿀 수 있다. 도자공예 전문용어가 어려운 이유는 다양하고 복잡하겠으나, 낮은 의미 환기성1), 일상생활에서 접해보지 못한 낯선 어휘 사용, 같은 의미의 여러 말 혼용, 개념이 모호한 용어 사용 역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도1>「인화문 골호/뼈항아리 印花文骨壺」통일신라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도2> 지거링(Jiggering), Wikimedia Commons
① 낮은 의미 환기성: ‘박지(剝地)’<도3>는 ‘바닥을 긁다.’라는 뜻이다. 음성언어로 이해하는 것은 물론, 한자어를 봐도 본래의 개념인 분장 후 문양의 바깥 면을 긁어내어, 바탕과 문양의 색깔이 대비되고 문양이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기법이라는 뜻을 생각해 내기 어렵다.
② 낯선 어휘의 사용: ‘절요형’, ‘복소법’, ‘갑발’, ‘회청’ 등 도자공예 용어의 많은 수가 현대인이 일상에서 접해본 적 없는 낯선 어휘다.
③ 여러 말 혼용: 번조, 소성, 구이는 동일한 의미를 지닌 용어들이다. 용어의 경제성, 사용의 편의성과 안정성을 위해 정리해야 한다.
④ 개념이 모호한 용어: ‘순백자(純白磁)’란 무엇일까? 뭐가 순수하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그래서 혹자는 무늬가 없는 순백의 백자를 뜻한다고 하기도 하고<도4>, 또 다른 이는 잡티 없이 유색이 매우 곱고 아름다운 모든 백자를 가리킨다고도 한다<도5>. ‘순백자’는 개념이 모호해 소통에 혼란을 일으킬 여지가 크다.
<도3> 분청사기 박지 잎 넝쿨무늬 병 粉靑沙器剝地葉唐草紋甁」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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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문용어는 처음 보는 개념의 용어라 할지라도, 용어의 글자를 보고 그 뜻을 유추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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