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틈새의 그릇 flat type series」 37.5×70.5×10.5cm
| 자기질 점토, 유약, 고화도 안료, 손 성형 후 가압성형 | 2024
도예가 황아람은 학부과정에서 도예공부를 마칠 즈음에 도예작업에 있어 어떤 방향과 내용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였다. 그 무렵 충남의 한 시골마을에 위치한 외갓집을 방문하게 되었고, 외가의 이모댁 곳간에서 외증조모께서 만드셨던 바구니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고 한다. 뚜껑 있는 바구니를 처음 접하고 자신의 작품제작 의도와 방향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많이 낡았음에도 촘촘히 엮인 바구니 모습에서 소박하고 성실했던 이전 세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기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이는 오래된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 사이에, 그리고 가족 구성원 간에 면면히 이어진 생활 유산이 자신의 예술의지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단절된 것이 아니라 살아서 공존하고 있음을 깨달은 계기가 된 것이다. 옛날엔 생활 주변의 풀과 짚, 덩굴이나 나무껍질 등을 이용하여 의· 식·주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기물들을 만들어 사용했었다. 그런 가운데 몇 가지 재료를 적절하게 다듬은 후에 꼬거나 엮고, 또는 엇비슷하게 짜면서 무늬를 넣기도 하여 나름대로의 멋스러움을 더한 것이니, ‘생활 속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실천한 셈이다. 황아람은 그때의 재료 그대로는 아니지만, 가늘고 길게 만든 흙가래를 세로와 가로의 방향으로 엮어 독특한 자신만의 도자 기물을 만들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틈새의 그릇 ball type series」 42×42×10cm
| 자기질 점토, 유약, 고화도 안료, 손 성형 후 가압성형 | 2024
황아람은 들풀, 지푸라기, 대나무, 왕골, 등나무의 덩굴줄기(라탄), 종이, 비닐 등 다양한 재료를 염두에 두며, 흙으로 엮는 작업을 어떤 형태로 펼쳐 나갈지 모색하면서, 작업에 새로운 변화와 좀 더 진전된 구상을 위해 일본 교토에 유학을 가게 되었다. 2년여간을 유학하면서 현지의 바구니 사용례를 살펴보고 그곳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작업의 발전 방향을 찾게 되었다. 교토는 일본에서 대나무 공예가 발전했던 대표적인 지역 가운데 한 곳으로 그 섬세한 장식이 알려져 있거니와, 황아람은 생활 속에서 즐기는 그들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바라보았다. 식물성 섬유질 재료로 바구니나 채반 등을 만드는 전통은 세계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으나 특히 교토에서 작가가 체험한 것은 ‘정갈하고 세밀한 부분’에 기울인 작업태도였다. 이런 태도는 황아람의 작업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황아람은 초경공예, 짚풀공예 등의 바구니 제작 기법을 도예에 응용하고 소성塑性한 흙의 물성을 활용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1). 황아람의 주목할 만한 작품들은 흙으로 빚었지만 마치 대나무로 엮은 듯한 크고 작은 합盒이다. 합은 일반 도자기와 달리 뚜껑이 있어 여닫을 수 있고, 아래와 위가 서로 만나 하나가 된다. 합 작품을 제작하는 황아람의 작업과정을 보면, 손 성형 후 석고를 이용한 가압성형 방식을 취한다. 전체적인 형태를 구상하고 모델링을 한 다음, 모형 위에 그리드를 그리고 조각보처럼 면을 적절한 넓이로 나눈다. 모형은 뚜껑과 하단 부분을 각각 석고로 떠서 미리 틀을 만들어 놓는다. 점토를 가늘고 길게 빼서 바구니를 엮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엮는다. 이렇게 엮은 조각들을 모아 석고 틀 안에서 그것들을 이어 붙여 형태를 완성한다. 마지막 과정으로 850℃에서 초벌 소성을 하고 유약을 입힌 후에 1230~1250℃에서 재벌 소성을 하여 작업을 마무리한다. 황아람은 대나무 줄기를 다루듯 흙을 엮어 구울 때, 흙으로 만든 가마보다는 안정적인 온도 유지를 위해 전기가마를 사용한다. 대나무 줄기를 망처럼 엮은 겉모양은 수많은 인연의 실타래를 이어놓은 듯하다. 세상 속에 살아가며 서로 얽히고설킨 인연의 은유적 표현인 것이다.

「유연한 조각 연작」4×25×3.5cm, 4×25×3cm | 자기질 점토, 유약, 손 성형 | 2025
황아람이 도자로 빚어 제작하는 합 작품2)은 조각보처럼 이어 붙인 조각들을 하나로 합쳐 위아래가 만나 완성되는 형태이다. 작업하는 일상의 매 순간 들을 작가의 정성에 담아 엮어낸 것이다. 엮인 줄기 사이의 틈새가 보인 합은 생명이 있는 듯 숨을 쉰다. 조각들을 모아 만들어 낸 합은 단순히 물건을 담는 실용적 기능을 넘어 가느다란 흙가래 사이의 틈과 여백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새로운 이야기를 건넨다. 황아람은 이러한 의미를 담아 「틈새 의 그릇」 연작을 제작한 것이다. 대나무나 갈대줄기 등으로 만들어 크고 작은 구멍이 나 있는 듯이 보이는 「틈새의 그 릇」(2022, 자기토, 1250℃ 산화소성)은 여러 개의 점토를 조각처럼 만든 뒤에 여러 조각들을 하나로 합치고, 위의 뚜껑과 아래의 본체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틈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양하게 은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선에 유연한 마음을 담아 전하고 싶어 한다. 특히 황아람은 흙을 만지는 손놀이의 촉감을 통해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어 ‘살아있음’을 느낀다. ‘살아있음’의 느낌은 중국의 남북조시대에 활동했던 사혁謝赫이 ‘화육법画六法’에서 제시한 기운생동気韻生動처럼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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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아람은 서울여자대학교 공예학과에서 공부하였고,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현 교토예술대학) 대학원에서 예술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2021년 청주국제공예공모전에서 동상을 수상했으며, 한국과 일본에서 여러 번의 아트페어와 그룹전시에 참여하였다. 일본 교토도자기회관(2019년)과 KCDF갤러리(2023년), 비채아트뮤지엄(2025년)에서 개인전을 통해 작품세계를 소개했다.

사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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