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21. ~9. 6. 갤러리 모순
TIME TO SHINE
이정용의 작업은 흙과 금속, 그리고 시간이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서 빛을 발한다. 그의 기물은 단단히 빚어진 백자 위에 은銀을 입히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그러나 이 은빛은 단순한 표면의 장식이 아니라, 백자가 지닌 절제된 맑음 위에 시간의 결을 새겨 넣는 방식이다. 작가는 은이 백자 위에서 보여주는 변화에 오래 매혹되어 왔다. 은은 손의 사용, 공기의 접촉, 습도의 차이 속에서 색이 옅어지거나 짙어지고, 마모와 변색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그 흔적은 소모가 아니라 기록이며, 사라짐이 아니라 지속이다.
그에게 도자기는 그저 물건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흙과 불, 금속이 만나 이루어내는 미묘한 긴장은 삶을 닮은 과정이며, 시간이 흘러야만 완성되는 유기적 구조다. “은이 닳아가고 변색되는 과정 자체가 작품이에요. 멈춰 있는 물건이 아니라 살아가는 존재처럼 계속해서 변하죠.” 그는 표면의 균열과 색의 흔들림을 실패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변화야말로 재료가 스스로 말하는 언어이며, 작가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생명의 증거라 믿는다. 이번 전시의 제목 《Time to Shine》 은 그 이름처럼 빛이 드러나는 순간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반짝임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 끝에 흙과 불, 금속이 응축되어 비로소 빛을 내는 과정이다. 불 속에서 소성된 백자, 그 위에 올려진 은빛, 그리고 시간이 더해져 드러나는 결. 이 모든 것이 겹쳐질 때, 관객은 기물이 품고 있는 고요하고도 강렬한 울림을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이를 “멈추어 있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호흡하는 표면”이라고 표현한다. 그의 작업은 빛과 질감, 시간과 물성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하나의 풍경이자, 관조와 감각을 불러내는 장치다.

사진. 갤러리 모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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