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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월호 | 작가 리뷰 ]

최홍선_ 기미의 순간 그리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 (something)
  • 홍지수 미술학박사, 미술평론
  • 등록 2026-01-29 11: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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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선 개인전《것》

2025. 12. 2. ~12. 20. 갤러리완물 



최홍선의 전시《것》은 이십여 년 전, 작가가 유럽 여행 중 숲에서 길을 잃었던 경험에 기인한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무작정 길을 걷다 들어선 낯선 숲. 그 속에서 작가는 길을 잃었다. 출구를 찾으려 애를 쓸수록 마음은 애 끓고 행동은 허둥지둥했다. 숲이 나를 삼킬 것 같은 검은 미로, 괴물처럼 느 껴지고 마음 황망해질수록, 찾아야 할 위치와 방향 갈피 잡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나 어느덧 시간이 지나 환경이 적응되니 날 선 감각이 편안해 졌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며, 흙과 식물이 내뿜는 비릿하면서 상쾌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내가 속해 있던 문명세계에 맞춰 작동하던 감각 체계가 낯선 숲 속에서 무력화되었을 때, 그리고 뒤이어 마음의 상태가 안정화되니 같은 현실이 달리 보이는 것은 어느 연유인가. 


숲은 인간이 통제하고 규정하기 힘든 많은 상황이 일어나는 곳이다. 나무가 울창한 숲은 생명이 있는 것들, 혼을 지닌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저 익숙한 숲을 바라보거나 탐색하는 것은 경이롭고 충만한 경험이나, 낯선 숲이라면 측량할 길 없는 숭고함과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어둡고 눅눅하고 침침한 숲. 자잘한 가지와 식물이 교차하며 빼곡한 선들이 집적을 이루는 곳. 이름 모를 새와 곤충이 울음소리를 내는 어두운 숲 속을 걸으면 나무의 정령들이 죽은 자의 혼령처럼 나를 덮치고 삼킬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해 온다. 이를 두고 불가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두려움의 원천이 숲이 아닌 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울창하고 신성한 숲이 압도하는 초자연성은 인간의 나약한 마음이 헤아리고 가늠하기에 너무도 기묘하고 거대하다.


「것 Geot」 14×36.5×32.5cm | Glazed ceramic | 2025


숲이 어미의 자궁처럼 눅눅하고 축축한 곳, 근원적인 장소여서 작가가 자기 내면과 근원을 성찰하고 무뎌진 감각을 새롭게 일깨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을까. 아니면 뒤돌아보니,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현상들도 숲처럼 늘 합리적 이성이나 상식 혹은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범위를 넘어 서긴 매한가지라 여겨서 숲에 매료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낯선 숲과 맞닥트렸을 때 느낀 영적인 힘과 정신, 마음 전환의 경험이 작가의 전작을 추동했던 생각들과 맞물린 것은 분명하다. 


이번 전시는 기존 전통 사물이 지닌 시각과 정서를 사물 감각으로 발전시킨 「것 Geot」 연작, 기의 순환을 형체의 피부 위 무수한 숨구멍으로 형상화한 「호흡 Breathing」 연작 그리고 평면작업인 「무제 untitled」 연작으로 구성했다. 작가가 필요로 하는 내면의 형상, 상태, 의도에 따라 작가는 매체를 선택하고 시도한다. 최홍선의 작업은 작가가 경험한 혹은 실재했던 특정 공간 속에서 시시각각 변화를 거듭하는 공간의 양태, 다양한 오감이 느낀 발생의 조짐, 그 찰나와 같은 일순간을 형상으로 붙잡는 데 집중되어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그래서 특정하고 분명하며 단호한 형상으로 붙들거나 가두는 재현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계속하여 시도할 수밖에 없는 예술의 시시포스적 본능이기도 하다. 그는 현실, 어느 생의 순간에 작가가 오롯이 느낀 모호한 기운과 흐름, 떨림 등을 최대한 가까운 색, 형상, 상태에 빗대어 표현한다. 이번 전시뿐 아니라 늘 미세하고 예민한 기미를 포착하는 일이 작가의 관심사인 것 같다. 

 

「것 Geot」 64.5×25×10.5cm | Glazed ceramic | 2025



사진. 갤러리완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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