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미더미」 가변 설치 | 조형토 | 2025
곰팡이는 흔히 부정적으로 인식되지만, 나에게는 시간과 부재, 감정의 잔재를 드러내는 매개체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구석에서 서서히 번져나가는 곰팡이는 그 자체로 시간의 축적이자, 잊힌 흔적을 암시한다. 나는 곰팡이를 단순한 오염이 아닌 감정적 존재로 바라보며, 그 유기적이고 번지는 성질을 조형물로 구체화한다. 이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드러나지 않는 존재의 무게를 시각화하고자 한다. 각기 다른 형태로 표현된 곰팡이의 형상은 잊힌 기억과 내면의 감정을 투영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무제」 37x8x25cm | 조형토 | 2025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자라난 곰팡이를 마주한 것이 시작 이었다. 작업에 덮어둔 천과 남겨진 커피 표면에 자라난 곰팡이는 내가 없는 동안 흘러간 시간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었다. 내가 멈춰 있는 사이 다른 것들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곰팡이를 오랜 시간 바라볼수록, 그것은 단지 불안의 표식이 아니라, 내 부재를 대신 채워주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곰팡이는 내가 없는 동안에도 그 자리를 차지하며, 빈틈을 드러나지 않게 만들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일종의 위안을 얻었다. 곰팡이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지만, 오히려 나와 닮아 있었다.
초기 작업은 더 개인적인 이야기에 가까웠다. 「내가 잊은 시간」이라는 제목처럼, 비어 있던 나의 시간을 다시 환기하는 데 집중했다. 그래서 내 자리를 대신 차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사람과 늘 맞닿아있는 가구에 주목했다. 스툴이나 탁자, 조명처럼 생활 반경 안에 놓이는 형태를 만들었다. 작품이 바라보는 대상이기보다 일상에서 함께 머무는 존재가 되길 원했다. 곰팡이가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듯, 가구 형태의 작업이 조용히 일상 공간을 침투하길 바랐다. 조명과 가구는 여전히 내 작업의 기반이며, 함께 머무는 것에 관한 생각은 이후의 조형작업으로 확장되었다. 지금은 야생 덩굴이 감싼 사다리와 화분들의 진열을 작업으로 옮기고 있다. 오래된 빌라 현관이나 골목길에서 흔히 보이는 임시 정원에서 출발했다. 이 정원은 정성의 흔적인지 방치된 장소인지 분간하기 어렵지만 식물들은 하나같이 잘 자라고 있다. 이 진열은 주인의 취향과 생활의 흔적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렇지만 누가 가꾸는지는 잘 모르는 채 식물들은 자란다. 그 분위기 속에서 돌봄과 방치의 이미지가 겹치고, 야생에 가까운 환경에서도 스스로 자라나는 모습에 대한 대견함과 애틋함이 남는다. 우리는 보호받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자라야 하는 시간이 더 길다는 점에서 이 장면과 닮아있다.

「말라버린 안부」 24x34x13cm | 조형토 | 2025
사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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