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일 오전 11시부터 망우역사문화공원의 아사카와 다쿠미 묘역에서는 ‘아사카와 형제 현창회’의 주최로 한일수교 60주년 아사카와 다쿠미 94주기 한일합동 추모식이 있었다. 한일 우호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는 아사카와 다쿠미(1892- 1931)의 94주기를 맞아 양국의 문화계 인사들과 기자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60~70명이 모여 추모식을 하였다. 필자는 두 번이나 아사카와 다쿠미에 관한 글을 쓴 바 있지만 매년 4월 2일 기일에 실시하는 추모식에는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추모식의 특성상 내빈과 참석자들에 대한 소개가 길게 이어졌고,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김종규 현창회 고문과 가와세 가즈히로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이 한일 공동으로 헌주하였다. 제수와 아울러 아사카와 형제에 관한 내용의 책과 잡지도 헌서하였다. 여러 명의 추모사와 헌시, 추모곡으로는 이상현 씨의 대금 연주가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참가자들 모두가 묘 주위에 둘러서서 “나의 살던 고향은”을 2절까지 합창하였다. 그리고 기념촬영 후에는 현창회에서 준비한 점심을 나누고 폐회하였다.
도미이 마사노리 교수가 아사카와 형제와 경성 책자를 소개하고 있다.
아사카와 다쿠미(1892-1931)는 누구이며 왜 그렇게 모여 추모하는가?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한국으로 온 그의 형 아사카와 노리다카를 따라 1년 후에 들어온 다쿠미는 임업시험소에서 일하면서 한반도 수종을 연구하고 조림에 힘쓰는 동시에 형 노리다카와 함께 전국의 도요지를 탐방하고 조선백자를 수집·연구하여 한국과 일본에서 전시회를 여는 등 한국의 백자를 일본, 나아가 세계에 알리는 데 일조하였다. 그는 1929년에 『조선의 소반』에 대한 책을 냈고. 1931년에는 『조선도자명고』를 탈고하였으나 급작스럽게 폐렴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사후 5개월이 지나서 야나기 무네요시의 도움으로 이 책이 출판되었다.
아사카와 노리다카의 스케치_ 옹기와 기와를 만드는 작업과정
다쿠미는 평소에 한국말을 잘했고 한국을 사랑했으며 죽어서도 그의 유언대로 한국 땅에 묻혔다. 당시에는 지금의 이문동에 묻혔었고, 1937년에 도로 건설로 인하여 현재의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이장됐다. 이장된 이후로 거의 잊혀질 뻔한 묘지는 1964년에 방한한 화가 가토 쇼린진(1898-1983)이 어 렵게 찾아낸 이후로는 임업시험장 직원들에 의하여 가꾸어지며 추모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다카사키 소지의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1982)』이 일본에서 출판됨으로써 한국을 사랑하다 한국 땅에 묻힌 인간미 넘치는 생이 한국과 일본의 일반인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되면서 한일 우호의 상징이 되었다. 1984년 8월 23일에 임업시험장 직원들이 세운 추모비에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라 적었다. 근래에는 추모식을 주최한 ‘아사카와 노리 다카-다쿠미 형제 현창회’의 이동식 회장, 노치환 사무국장을 필두로 지극히 순수한 마음으로 30여 명의 회원들이 봉사하고 있다. 이날 추모식에 모인 인원은 지금까지 가장 많은 수였다고 한다. 회원들이 추모식을 위하여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쇄하고, 현수막을 걸고, 묘소 정리, 제수 준비, 손님들의 점심식사 준비 등 적지 않은 일들을 한다는 자체가 감동적인 일이다.
특히 이번 추모식에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아사카와 형제의 유지를 계승하는 세 명의 도예가들이 우연히 각자 참석해서 너무나 기뻤다며 사회자는 세 번씩이나 감사함을 전했다.
도예가 세 명 중 필자는 1931년 발행의 『조선도자명고』 원본과 그와 관련된 책자들 7 권을 전시하려고 가져갔는데 이것을 귀중한 자료라며 제수와 함께 제사상 위에 올렸고, 또한 필자가 아사카와 다쿠미에 대하여 썼던 『월간세라믹스(1992. 8)』와 『월간도예(2021. 2)』 잡지를 향상香床 옆 바닥에 펼쳐 놓는 영광을 누렸다.
또한 강원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흑자장 김병욱 도예가는 이날 흑자 잔 두 개를 기증하여 그 술잔으로 제수상에 올려 사용하였으며 작은 항아리도 따로 기증하였다. 그리고 경기도 여주 금사리에서 작업하는 양구 도예가는 이미 2024년에 일본 야마나시현 호쿠토시에 있는 ‘아사카와 노리다카-다쿠미 자료관’에 달항아리를 기증하여 영구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세명의 도예가, 좌로부터 박순관, 김병욱, 양구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5년 5월 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온라인 정기구독 포함)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