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회진 《바다 그 후》
4. 18. ~5. 1. 하남스타필드 작은미술관
「바다 2501」 37.5×30.5cm | 산백토, 반투명, 옐로우매트, 보라유 | 1250℃ 산화 | 2025
나의 고향은 남쪽 바다 가까운 곳!
작은 고개 하나만 넘으면, 갯내음을 머금은 광활한 검은 갯벌, '여자만'이라 불리는 바다가 펼쳐졌다. 초등학교 교가에도 “월악산 밑에 여자만을 옆에 끼고 도회등에 우뚝 솟은 우리 학교는”이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교가를 목청껏 부르며 갯벌에서 뒹굴던 유년 시절의 갯벌은, 나를 키우고 성장시킨 소중한 추억의 장소다.
그곳을 일찍 떠났지만, 고향 바다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가슴 시리다. 거침 없이 밀려드는 밀물이 되면 얕은 물가의 갯바위나 끝이 없을 듯 이어진 간척지 방죽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놀았고, 오랫동안 기다리다 썰물이 되어 갯골이 드러나기 무섭게 갯벌로 달려 들어갔다. 고사리손으로 고동을 줍고 맛조개를 캐고, 까맣게 몰려 있던 농개며 칠게는 어찌나 빠른지 게굴 속으로 쏙 숨어버려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물가에서 튀듯 뛰어다니는 망둥어나 갯벌 가득했던 짱뚱어 역시 아이들에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것들을 쫓다 넘어져 온몸에 뻘을 뒤집어쓰고 짱뚱어처럼 보여도 그저 즐겁기만 했다.
「바다 2516」 30×37.5cm | 산백토, 핑크유, 레드유 | 1250℃ 산화 | 2025
물이 빠져 모래톱이 드러나면, 모래 반 조개 반일 만큼 지천으로 널린 재첩을 양동이에 한가득 담아 낑낑대며 줄지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무더운 여름날, 어머님은 마당 한켠 가마솥에 재첩을 한가득 삶으시고, 뽀얀 조개국물에 애호박이나 부추를 듬성듬성 썰고 조갯살을 듬뿍 넣어 재첩국을 끓이셨다. 모깃불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평상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나눠 먹던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 잊을 수 없는 어머님의 손맛이고, 고향의 향수다. 지금은 기억만으로도 행복하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의 바다일지 몰라도, 고향 사람들에게 바다는 고된 노동의 현장이었고, 갯벌은 어머니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어릴 적, 동이 트기 전 어머니를 따라 바다로 일하러 간 적이 있다. 붉은 불덩이가 솟아오르면 하늘도 바다도 붉게 물들고, 번들 거리는 갯벌은 환상처럼 빨갛게 빛났다. 낚 시꾼들이 미끼로 쓴다는 갯지렁이 잡이는 대단히 고된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가정경제를 지탱하는 든든한 수입원이기도 했다. 새벽녘 물이 빠진 뒤의 갯벌에는 물결 자국이 남는다. 조수의 흐름으로 형성된 선형의 패턴, 수많은 해양 생물들이 남긴 구멍과 흔적, 고동이 지나간 길, 작은 갑각류의 발자 국… 모래와 진흙이 섞여 만든 경계는 물의 흐름에 따라 직선이나 곡선으로 나타나며, 이는 자연만이 할 수 있는 예술이다. 감히 사람이 흉내 내기조차 버거운 조형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갯벌의 인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가슴에 각인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작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충동을 오래 도록 품게 되었다. 그것이 헛된 만용일까? 고향의 바다는 우리에게 수많은 고단함을 안겨주었지만, 자연이 만들어 놓은 그 갯벌의 문양과 패턴은 내게 향수의 희비가 뒤섞인 감성으로 남아 평생 잊히지 않았다. 지금 까지도 내 작업의 주요한 모티브가 되어 주고 있음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자연이 빚은 그 이미지와 인상을 작업의 모티브로 삼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연스러움을 인위적으로 구현해야 하는 숙제가 늘 따라붙는다. 그럼에도 내 마음속에 내재된 바다의 이미지를 색과 선, 그리고 흙의 요철로 풀어내어 도판 위에 표현해보고자 하는 마음에, 감히 용기를 내고 있다.
「바다 2472」 39.5x33.5cm | 산백토, 코발트블루유, 코발트유 | 1250℃ 산화 | 2024
사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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