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21. ~4. 12. 갤러리 도피소
볼 수 없는 것들의 형상
임상채 작가는 지난 30년간 도자기 예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도자기 명인이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흙과 불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재료를 통해 자신만의 미적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의 작업은 단지 전통을 고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고유한 미의식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끊임없는 실험과 도전을 반복해왔다. 그가 만들어내는 도자기들은 단순한 형상이나 물질의 조합이 아니라, 시간과 감각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독창적인 예술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난 30년 동안 흙, 물, 그리고 불과 함께 나눈 예술적 여정의 응축된 결과물이자, 그 여정이 물질로 현현顯現된 하나의 기록이다. 도자기 제작은 단순히 손으로 흙을 빚고 불에 구워내는 과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의 요소들과 인간의 직관, 손의 감각, 그리고 예술적 상상력이 결합되는 복합적이고 정교한 과정이다. 흙덩어리가 하나의 조형물로 변모하고, 마침내 달항아리 같은 작품으로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은 작가조차도 완전히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시간이 끊임없이 흐른다. 그 흐름 속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을 자연에 맡기고, 동시에 자연을 이해 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탄생」 30×30cm | 도판에 유약
우리가 밟고 사는 땅, 그 뿌리를 이루는 거대한 바위는 수천, 수만 년에 걸쳐 쪼개지고 깎이며 암석이 되고, 암석은 다시 바람과 비에 풍화되어 모래로, 그리고 마침내는 부드러운 흙으로 변화한다. 이처럼 오랜 시간과 자연의 압도적인 힘이 만들어낸 흙이 작가의 손을 거쳐 기물이라는 형태로 태어 나기 전까지, 인간의 개입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 찰나의 개입이 불가역적인 변화, 즉 영속적인 흔적을 만들어낸다. 흙이 도자기로 완성되면, 그 작품은 더 이상 수정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작품을 분쇄기에 넣어 갈아버린다 한들, 작가는 책임질 수 없는 무엇인가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다.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작가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도자 회화는 그간 쌓아온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각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도판 위에 다양한 유약을 바르고, 얹고, 섞어가며 세 차례에 걸쳐 1350℃의 화열에서 구워내는 이 작업은 단순한 장식이나 기법을 넘어 도자기의 표면을 회화적 캔 버스로 확장시키는 실험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유약들이 화열 속에서 엉키고, 팽창하고, 수축하면서 오직 불 속에서만 만들어지는 유일무이한 추상적 패턴이 형성된다. 이 유약의 물성과 상호작용은 작가가 지난 수십 년 간 축적해 온 배합과 발색의 노하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동시에, 세 번에 걸친 고온 소성은 그만큼 작품이 깨지고 실패할 확률도 높아, 고도의 집중력과 끈기를 요구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하지만 바로 그 불확실성과 긴장감 속에서 도자기 회화는 단순한 물질을 초월한 예술로 승화된다.
작가는 이처럼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무형의 본질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고자 한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품을 구성하는 데 있어 반드시 존재하는 본질적인 요소들 -형성과 파괴, 창조와 소멸, 더함과 상실 같은- 을 말한다.
「시작」 35×35cm | 도판에 유약, 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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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호 관장은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실내건축학과를 수료하고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에서 건축학 석사를 취득했다. 미국 및 캐나다 최상류층 맨션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회사인 Stuckenschneider Design과 집합 주택을 중심으로 공공건물, 공원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설계하는 중형 건축사무소 Trivers Associates에서 재직했다.
사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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