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3. ~4. 29. 갤러리 인사아트
칠漆로 넘어서는 경계
전시 전경
‘칠흑’같은 어둠이라는 말처럼 전통적인 옻칠의 색감은 검정색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도자와 옻칠을 연구하고 작업을 해온 박미란 작가의 옻칠 작품은 색의 향연이라 부를 정도로 다양하고 오묘한 색들이 겹쳐진다. 옻칠은 작가의 손에서 물감처럼 표현되어 세상에서 하나뿐인 그림을 그린다. 전통적 개념의 칠공예는 작가의 현대적 미감이 더해져 칠예술로 거듭난다.
박미란 작가는 옻칠의 질감과 색감에 매료되어 서울시 무형문화재 1호 칠장 수곡 손대현 선생을 찾아가 하루 10시간씩 옻칠을 배웠다. 옻칠과 전공인 도자기의 각각 다르면서도 깊이 있는 매력에 빠져 살았다. 옻칠 작업을 하는 작가는 많지만 그 중 가장 도자를 잘 아는 작가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만큼 독보적인 칠기술과 감각을 자랑하는 박미란 작가가 여섯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Aurore 曙光 - 새벽빛》이라는 타이틀 아래 「The Radiance Within-내면의 빛」이라는 시리즈를 선보인 이번 개인전은 내면의 빛이 드러나는 새벽의 순간들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하루를 준비하는 새벽은 매일 찾아오지만 항상 같을 수는 없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다른 빛과 색으로 세상을 깨우는 새벽이 한없이 고요하고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도 있다. 가끔은 새벽을 마주치지 못할 수도 있다. 작가는 매일 다른 새벽의 모습에 인간 내면의 빛을 그려 넣는다. 본능적인 욕구와 욕망을 비롯해 영적인 안정감과 의지 등 작품에서 보이는 다양한 내면의 빛은 관람객이 마주하는 순간 또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
「The Radiance Within-18」 56×36cm | 백자토, 색유, 색옻칠, 나전 I 2024~25
도판으로 선보이는 새로운 작품들은 회화 작품처럼 보일만큼 다채로운 색감과 감각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도판 속 유약과 옻칠은 서로 다른 색감과 질감, 광택을 보이지만 하나로 어우러지는 데 전혀 이질감이 없다. 작품 속에서 옻칠로 덮어진 부분에 반짝이는 자개로 수놓아진 작은 정자가 보이는데, 이것은 작가의 ‘정심거靜心居’, 즉 고요한 마음의 거처를 의미한다.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는 마음의 평온과 정신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상징하는 것. 작가는 내면의 평온과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삶을 희망하면서도 작가를 둘러싼 환경과 내면의 갈등이 부딪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한다. 핑크 빛 유약 한 가운데 짙은 옻칠로 작업한 작품에서도 정자가 나온다. 거칠게 표현된 유약은 작가의 외딴 섬이고 그 속의 매끈한 옻칠은 유토피아다. 외딴 섬과 유토피아는 서로 다른 의미처럼 질감과 색감이 대비된다. 유약이 뭉개뭉개 피어 오르게 표현된 작품에서는 옻칠로 땅을 표현하고 그 곳에 자개로 보리를 심어 생명의 근원을 표현했다.
사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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